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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효진 Apr 12. 2017

도쿄 체질

2017.3.16~3.25②

언급했듯 이번 여행 기간은 9박10일이었으나 딱히 한 일이 없어서 포스팅할 건덕지도 없다. 시리즈도 상당히 짧을 것으로 사료된다. 첫날은 모두의 환영 속에 한 네시 반 정도까지 마셨던 것 같다. 전날 밤 짐싸느라 밤을 새서 분명히 가볍게 놀겠다고 선언을 했건만... 사람이 점점 늘어났고 처음 보는 이들의 관심을 홑몸으로 커버하다 보니 날이 새 가고 있었다. 마지막 잔인 신메뉴는 동네 레스토랑 사장님이 사줬다. 이날 사진은 모토무라 시부야점에서 먹은 규카츠랑 저 딸기 술 사진 뿐이다. 참고로 규카츠는 그냥 한국에서 먹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오후 4시 50분경 약 3분의 웨이팅 후 안착했는데, 그 길고 긴 줄에는 그저 가게가 작은 것도 영향을 미친 듯했다. 암튼 막 시부야점 줄 길다고 딴 동네 가서 먹었다며 자랑할 것 없는 맛이다.


첫날 수많은 사람 중에서 자신을 앗쨩이라 칭하는 아저씨 한 명을 소개받았는데, 처음에는 내 친구 치쨩과 아는 사이 같기에 경계를 풀었다. 뭔가 먹을 것을 자꾸 추천해주고 싶어하고 셋이 같이 가자고 해서 그러려니 했지만 알고 보니 꽤 시끄러운 캐릭터였던 모양이다. 라인을 주고 받기는 했는데 다음날 일 때문에 치쨩이 먼저 나가면서 사람들에게 앗쨩이 날 성가시게 하는 걸 막아달라고 구구절절이 부탁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치쨩은 앗쨩한테도 똑같은 내용으로 장문의 라인을 보내 놓았는데, 취해서 일본어가 읽히지 않는 상황인지라 뭔소린지 알 수가 없어서 “야사시스기쟝~”이라고 적당히 대답을 한 후 좀 더 놀다가 집에 들어왔다. 다음날 앗쨩이랑 만날 약속을 하고는.


솔직히 둘만 보기도 싫고 약속도 귀찮았는데 이게 내일 점심! 이라는 구체적 시간까지 나와버리니까 피할 수가 없었다.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버리면 뭔가 국제적으로 한국인의 이미지에 누를 끼칠 것 같은 이상한 책임감도 들었다. 그런데 일어난 시간은 오후 한 시.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핑계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앗쨩에게 지금 일어났는데 미안해서 어쩌냐고 돌려돌려 연락을 했는데 그도 방금 일어났다는 답이 왔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그의 인도에 따라 런치를 먹기로 하고 씻고 나왔다. 늘 가는 바 옆에 붙어 있는 가게. 내가 처음 요요기에서 묵었을 때 저 바를 들어갔다면 똑같이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을까? 아무튼 앗쨩과 자리에 앉아 메뉴를 주문했다.



멕시칸 풍의 닭고기 요리를 주문했다. 진심 이 시점에서 나새끼 일본어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다. 어제의 숙취가 잔뜩 남은 얼굴을 한 앗쨩은 물 따를 때 손까지 떨었다. 갑자기 참기자정신이 샘솟아 인터뷰를 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밥 먹는 것도 드럽게 빠르고 상태도 안좋아 보여서 눈치를 보며 배부른 척을 하고 가게 앞에서 헤어졌다. 어제는 무슨 스윗츠를 좋아하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더 함께 하기엔 내 정신과 시간이 너무 소모되는 기분이었다. 이날부터 앗쨩과 점심 먹은 사실은 체류 기간 내내 놀림거리가 됐다. 아니 처음부터 말하라고 그런 캐릭터면은... 


집에 돌아와서 뒹굴뒹굴거리다가 해도 너무한 것 같아서 늘 가는 킷사텐으로 향했다. 사실 첫날 도착하자마자 그 카페에 갔는데, 1월에 도장 여섯개 짜리 스탬프 카드를 받은 것을 또 기한 내에 채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고질병이 도졌기 때문이다. 스탬프를 받을 수 있는 기한은 17일까지, 1월에 받은 도장은 세 개. 16일과 17일 부지런히 마셔주지 않으면 미션 컴플리트를 할 수 없다. 나름 뭐라도 써 보겠다는 생각으로 컴퓨터를 들고 다니면서 결국 이뤄냈다. 그러나 글은 한 줄도 적지 않은 채 친구들에게 소맥 맛있게 말아 줄 방법만 유튜브에서 찾아봤을 뿐...

이날은 늘 가는 바에서 내가 주인과 친구들에게 줬던 선물을 시연하는 날이다. 나는 원샷하면 불이 꺼지는 LED 소주잔 한 쌍과 소맥용 LED잔, 소맥제조기와 참이슬 한 병과 양반김과 찰떡쿠키를 선물했다. 소맥을 말기 위한 등산용 참이슬과 LED 소주잔 샘플에다가(밧데리 교환이 안 되기 때문에 내 걸 따로 가져갔다. 나야말로 야사시스기쟝~) 청포도에 이슬, 자몽에 이슬까지 가져갔다. 덕분에 캐리어가 아주 무거워 뒤지는 줄 알았지만... 대충 사람들 모였을 때 소맥을 말았지만 인기는 없었다. 그저 한국인 술 쎄다는 인상만 더해 줬을 뿐이었다.



한바탕 조용한 소맥바람이 분 후 가게에서는 예거 or 데킬라 내기 짱깸뽀 열전이 펼쳐졌다. 한 판 당 4천엔 걸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손님 전원에게 샷을 한 잔씩 돌리는 거다. LED 소주잔이 미친듯이 활약했다. 나도 참가했다. 이기면 되는 거 아닌가. 솔직히 한 번 쯤 골든벨을 울릴 용의도 있었지만 기회를 주지 않네... 이렇게 한참 마시고 또 먼동이 트는 것을 보며 귀가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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