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지난 2002년 막을 연 미쟝센단편영화제가 올해로 15주년을 맞았습니다. 그간 출중한 단편 영화들로 재능 있는 감독들의 등용문이 됐던 이 영화제에서는 영화 팬이 된 유명 감독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죠.
이번 미쟝센단편영화제는 지난 6월 30일 성공리에 폐막식을 치렀는데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참가작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수상의 영광은 많은 작품에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대상은 4년 연속 나오지 않았죠. 정승오 감독의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이 미쟝센상·심사위원 특별상·심사위원 특별상 연기 부문에서 상을 타며 3관왕의 영예를 안았고, 오성호 감독의 ‘연애경험’과 이충현 감독의 ‘몸 값’이 각각 두 개의 트로피를 가져갔습니다. 그만큼 해당 작품들이 뛰어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미쟝센단편영화제를 작지만 강한 영화제라고 부르고 싶은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대한민국 영화 관련 학과 출신들을 비롯해 영화 좀 찍는다 하는 감독들은 어김 없이 이 영화제의 문을 두드립니다. ‘곡성’의 나홍진 감독부터 ‘범죄와의 전쟁’ 윤종빈 감독, ‘늑대소년’의 조성희 감독이 미쟝센단편영화제의 수상자들입니다. 언급한 세 감독의 작품은 물론 본선에 진출한 모든 영화들이 기성 영화만큼, 혹은 그 이상의 기량을 보여 주고 있었는데요. 이 영화제 출신인 명감독들의 과거를 보는 듯한 흐뭇함이 내내 가득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미쟝센단편영화제는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단편영화제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제의 매력은 그 뿐만이 아닙니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3대 국제 영화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가 관객들을 매료하죠. 박찬욱, 류승완, 최동훈, 김지운, 봉준호 등 거장들이 합세해 만든 영화제인 만큼 낯익은 얼굴들도 가까이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올해는 배우 오달수, 정려원, 안재홍도 명예 심사위원으로 자리를 빛냈죠.
폐막식에서 시상자와 수상자의 재치있는 코멘트를 듣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시각효과연출상을 받은 ‘멈추지 마’의 김건 감독은 수상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손발이 저리네요”라며 소감을 시작하더니 “이 영화는 졸업영화로 찍었는데 수업을 너무 많이 빠져서 고졸인 상태입니다. 이번 수상으로 선생님께서 저를 통과시켜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줬습니다.
‘천만 요정’이자 충무로 대표 감초 배우 오달수는 평소 대중이 알던 코믹한 모습과 사뭇 다른 진지함을 보여줬습니다. 그는 정려원과 함께 비정성시 부문 시상을 했는데요. “머리는 크지만 심사를 하느라 용량에 한계가 왔습니다”라며 “(다른 심사위원들이)강한 사회적 발언이 많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씀하셔서 칼을 가는 말들이 나올 줄 알았는데 외려 더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들이 있었습니다”라며 영화계 선배로서의 의젓함을 뽐냈죠.
각 부문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감독들에게는 이름이 수놓아진 감독 의자가 부상으로 주어졌는데요. 미쟝센단편영화제 만의 재미있는 관례 덕에 폭소를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수상자는 해당 의자에 앉은 채로 소감을 말해야 했는데요. 앞에 앉아 축하하던 감독들이 후배들의 다리를 꼬게 하며 건방진(?) 자세를 하도록 이끌었죠. 이처럼 감독들이 인정한 감독으로 대접을 해 주니, 미쟝센단편영화제 수상자에게 자부심이 있을 만하겠죠?
절대악몽 부문 시상 때는 훈훈한 광경도 연출됐습니다. 수상자인 ‘사슴꽃’의 김강민 감독이 해외 체류 중이라 참석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그의 아버지가 대신 수상 소감을 전했는데요. 김강민 감독의 아버지는 품 속에서 준비한 종이를 꺼내시더니 멋드러진 소감을 전하며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했습니다.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는 감독들이 무명 감독들에게 보내는 지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순히 수상에 대한 관성적 축하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 혹은 후배들의 미래를 향한 경의를 표하는 감독들의 모습은 뭉클함까지 자아냈습니다.
최근 ‘곡성’으로 다시 한 번 칸 영화제에 초청받은 나홍진 감독은 이 일생일대의 사건에 대해 “제가 영화를 만들어 가는 방향이 옳게 나아가고 있는지 의심될 쯤 칸에 초청을 받아 힘이 되고 감사하다”고 밝혔습니다. 미쟝센단편영화제의 수상자들도 하나 같이 상으로 자신이 걷고 있던 힘든 길이 옳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전했죠. 제게는 감독들이 전부 또래였던 터라 이 말들이 더 절절히 와닿았습니다.
제15회 미쟝센단편영화제의 피날레는 감독이 아닌 스태프들에게 돌아갔습니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이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광경을 보면서 이 영화제에서는 모두가 존중받을 수 있다는 사실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년에도 열릴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박찬욱·봉준호·김지운의 과거도 만나 보고, 시네필로서 영화를 즐겨 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진] 미쟝센단편영화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