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서 나오는 말

부치지 못할 시

by 벼람


혼자 사랑에 빠졌음을 확인했기에 그 사람에게 더이상 전하지 않지만, 쓰지 않으면 답답한 마음.
그저 좋아했다는 말조차 조심스러워진 어느 순간, 내 안에 고이다 흘러넘친 감정을 조용히 꺼내 적었다.
부치지 못할 시를, 여기 남겨 둔다.


너라서 나오는 말


너와 이야기할 때

나는

그가 다른 방향을 보고 말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같은 문장인데

조금 더 천천히 나오고

같은 생각인데

조금 더 깊은 곳에서 건져 올린 말


마치

아무에게나 밀리지 않는 서랍을

너 앞에서만

잠시 열어두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안다

이 말은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어서 나오는 말이라는 걸


하지만

말이 머문 자리에

발자국은 남지 않는다


그는

이야기를 건네면서도

자리를 옮기지는 않고


나는

말을 받으면서도

이 관계가 어디쯤 와 있는지

가늠하게 된다


너라서 나오는 말과

나 때문에 달라지는 관계 사이에

아직 건너지 않은 강 하나


나는 그 강을

건너자고 말하지 않고

다만

바람이 흐르는 방향을 본다


이 말이

오늘의 진심인지

계속되는 움직임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분명한 건

이 순간의 언어는

우연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나는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지워버리지 않고


이 말을

조심스럽게

기억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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