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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랭크 May 04. 2022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내 일은 내 일, ‘파도살롱’

코워킹스페이스 파도살롱 이야기

강릉은 관광지다. 안목해변 카페 거리와 초당동 순두부 식당은 줄곧 문전성시를 이룬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최되고 강릉과 서울을 연결하는 KTX 노선이 증설 되면서 관광객은 더욱 많아졌다. 그렇다고해도 강릉이 독보적인 관광지인가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를 기점으로 이곳은 누군가에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일상 바깥의 장소가 되었다. 2시간이면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다. 한 손에는 노트북을 들고서.



오늘은 진짜 해변으로 퇴근합니다


업무용 협업툴 잔디의 ‘재택근무 리포트 2020’에 따르면 재택근무의 가장 큰 단점은 ‘업무공간과 생활공간의 비분리’(32%)였다.* 기존에, 호캉스를 통해 생활공간로부터 잠시간의 해방을 선사하던 도심의 숙박시설들은 서둘러 특화상품을 구성했다. 글래드 호텔의 ‘호텔로 출근해’, L7 호텔은 ‘work&life’ 프로모션은 평일의 출퇴근 시간에 맞게 호텔에 체크인-체크아웃을 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했다. 쾌적한 환경에서 일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강원도관광재단은 “워케이션은 강원도에서"라는 구호를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2021년 3월, ‘강원 워케이션 특화상품’을 출시한지 두 달 만에 8,238박이 판매 되었다.** 일하는 동안 쾌적한 환경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서, 일을 하지 않는 시간까지 신경 썼다. 저렴한 숙박 외에도 강원도의 자연경관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트레킹, 서핑 등의 액티비티 상품이 함께 포함되었다는 점이 구성의 차별점이었다.



2019년, 강원도 강릉의 파도살롱은 “지역에 새로운 물결을"이라는 슬로건을 가진 더 웨이브 컴퍼니에서 출발했다. 강릉으로 이주해 온 이와 주민으로 이루어진 세 공동창업자가 공유 오피스를 위한 터를 알아보다가 과거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던 원도심 명주동에 자리를 잡았다. 가장 인접한 바다는 안목해변과 송정해수욕장이다. 일을 마치고 차로 이동하면 바다까지 단 15분이면 된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일하는 공간을 판매할 뿐 아니라, 공간의 앞뒤를 둘러싼 생활과 체험을 위한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오늘은 해변으로 퇴근합니다’(2020)에서는 강릉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해변 피크닉, 명주동 골목투어 등의 리트릿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또한, 그동안 지속적으로 파트너쉽을 맺어왔던 3성급 숙소 ‘호텔 아비오'와 연계한 ‘일로오션'(2021)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로컬에 대한 애정, 그리고 정체성


파도살롱은 공간 이용객의 지분으로 강릉에 터를 잡고 있는 지역 주민이 80%에 외지 방문객이 20%일 것이라는 예측으로 공간 비지니스를 시작했다. 후자는 지금까지 계속 이야기해왔던 강릉에 살지 않는 ‘리모트 워커’이고, 전자는 이미 강릉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로컬 크리에이터’다. 실제 방문객 데이터에서 보여지는 비율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러한 접근방식은 파도살롱이 로컬 크리에이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정을 보여주는 듯 하다.



먼저, 커뮤니티 바에서 강릉 내 다양한 로스터리로부터 공수한 원두를 제공한다. 어느 공간에서든 커피 머신을 쉽게 볼 수 있지만, 파도살롱의 장기 이용객들은 다양한 로컬 원두를 마셔볼 수 있다. 2000년 초반부터 ‘보헤미안’과 ‘테라로사’를 필두로 쌓아 온 커피 도시 역사를 상기시키면서, 새로 생겨나는 로컬 로스터리와 상생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두 번째로, 기획자와 크리에이터를 위한 콘텐츠와 커뮤니티를 제공한다. 국내 OTT 서비스 중 점유율 2위(2021년 11월 기준)를 차지하는 '웨이브(Wavve)'의 캐치 프레이즈는 “재미의 파도를 타다”이다. 파도는 뻣뻣함 대신 유연함을, 고여있는 대신 업데이트 될 여지를 상징한다. 파도 살롱은 지리적으로 바다와 가깝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곳에 모여든 사람들이 유연하게 사고하고, 각자가 원하는 결과물을 내기 위해 지식과 정보를 업데이트 하도록 돕는다. 이를 위해, ‘파도의 시선' 서가 섹션에 기획자와 크리에이터를 위한 도서들을 주기적으로 큐레이션 하는 한 편, 이용객들이 진행중인 프로젝트를 홍보 하거나 동료를 구하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판서를 배치해놓았다. ‘오늘은 해변으로 퇴근합니다'나 ‘일로 오션' 등의 캠페인들이 주로 리모트 워커들을 대상으로 한 반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전용 '뉴웨이브 멤버십'을 제공한 이력도 있다.



끝으로, 시각적으로 과감한 디테일을 통해 공간의 본질을 보여준다. 직선 대신 파도처럼 굴곡 져 있는 디자인으로 특수 제작 된 목재 책상들이 창가에 일렬로 놓여 큰 파도를 그리고 있다. 이용객들은 앉은 자리에서 일에 몰두하다가도 유연함이라는 가치에 대해 한 번 더 떠올려볼 수 있다. 창가 쪽 외에 공간 내부에는 시디즈, 데스커 등 전문 오피스 가구가 비치되어 있어 일의 효율을 높여준다.



일하다가 언제든지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는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여기에는 얼마간의 낭만이 묻어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지를 빛나게 만들어주는 선제조건은 ‘일이 잘 되는 것'이다. 파도살롱은 일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꼭 필요한 강릉의 보금자리다.



ㅡ   

*잔디 재택근무 리포트 2020 (https://blog.jandi.com/ko/2020/05/06/wfh-report-2020/)

**한겨레, ‘김 대리는 산으로 출근, 바다로 퇴근… ‘워케이션’ 중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area/gangwon/1018659.html


- 글. 서해인 에디터 /공간 사진. the blank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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