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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랭크 Nov 30. 2021

도심 속의 열대식물 '맹그로브'

코리빙하우스 맹그로브

장류진 소설 <달까지 가자!>에는 좁은 원룸에 살다가 ‘1.2룸’이라는 애매한 매물을 계약하기 위해 들뜬 주인공 다해의 모습이 나온다. 그는 0.2룸 정도 되는 여분의 공간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가구를 놓는 장면을 상상하다 그 집에 금세 빠져든다. 소설 속 주인공에 해당되는 밀레니얼은, 남에게 보여지는 거의 모든 면면에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이를 위해 자발적으로 많은 것을 공개하기로 선택한다. 그러나 집이라는 공간은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프레임 바깥의 영역을 포함한, 즉 생활과 취향이 겨루는 공간이다. 지금보다 더 넓은 평수에 사는 걸 마다하지 않지만 주어진 공간이 크든 작든 그곳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채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소설 바깥에도 분명히 있다.


코리빙하우스 맹그로브 신설점 knock knock 전시- 아티스트 예진문의 방


" 매일의 필요에 따라 공간의 존재감이 조금씩 달라지는 현대형-보금자리 "


코리빙 브랜드 MGRV가 만든 ‘맹그로브'는 도심 속에서 살아가는 1인 밀레니얼이 겪는 주거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곳이다. 이들이 제안하는 ‘코리빙(co-living)’이라는 개념은 이제껏 쉐어하우스와 혼용되어 쓰이기도 했다. 가장 큰 구별점은 개인 공간을 확보하면서 누군가와 함께(co) 살아가는(living) 데에서 오는 이점을 취할 수 있는 주거 모델이라는 점이다. 혼자 머무르며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타인과 교류하며 필요한 걸 해결할 수도 있는 곳. 매일의 필요에 따라 공간의 존재감이 조금씩 달라지는 현대형-보금자리다. 맹그로브는 2020년 약 24세대가 입주 가능한 숭인점을 오픈하고, 이듬해 약 1km 근방에 있는 라마다호텔을 실임대하여 신설점을 오픈했다.


나만의 취향을 위한 소비가 늘 고정비를 지출하고 난 후 여분의 소비로 간주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밀레니얼 1인 생활자들은 취향에 더 많이 투자하기 위해 고정비를 줄이는 방향을 찾는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주거 공간에서 무엇을 보고 싶어할까? 맹그로브는 2021년 여름 신설점 오픈 기념 전시 <knock knock>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고자 시도했다. ‘똑똑’이라는 의성어는 누군가의 안온한 공간에 들어갈 때 벌컥 문부터 여는 대신, 집주인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틈을 확보하게 만들어주려는 최소한의 예의와 겸양을 담고 있는 소리다. ‘준비가 다 되면 문을 열어주세요’ 라는 다정한 신호이기도 한 전시 타이틀. 맹그로브가 자신의 주 고객층을 잘 알고 있다는 인상이 전해지는 이유다.


코리빙하우스 맹그로브 신설점 knock knock 전시 - 사회적기업 동구밭의 방


전시에는 2021년 가장 주목받는 아티스트와 브랜드 총 10팀이 참여했다. 참여한 크리에이터 중 704호에 입실한 예진문(yejinmoon)의 4.5평짜리 방은 ‘그 사람의 방은 그 사람의 세계다' 라는 제목의 영상으로도 함께 공개되었다. 관람객들은 이 영상을 통해 베니스에서 제작된, 그가 가장 좋아하는 화병이 방의 전면에 배치되었다는 점이나, 직접 읽고 페이지 귀퉁이마다 접어 둔 책의 목록들을 알게 된다. 전시는 평균 오후 6시까지 진행되므로, 관람객들이 전시를 통해 볼 수 없는 맹그로브 밤의 객실의 모습 또한 이 영상에 담겨 있다.


공간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건 영상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질 때 즈음, 그렇다면 오프라인으로 이곳을 찾아가 보아야 할 이유에 대해 의문이 들 수 있다. 우선 이 전시는 맹그로브 신설점의 세가지 룸 타입 중 두가지에 해당하는 싱글룸과 버디룸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구성이다. 관람객들은 누군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채우고, 배치한 방을 직접 관람하면서 실 면적 숫자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공간의 규모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예비 입주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운 공간'을 꿈꾸는 계기를 가져볼 수도 있다. 집이 아닌 단지 방, 하지만 다른 방들과는 구분된 각각의 방에 입장하면서 완결성 있는 감상의 경험이 하나씩 쌓인다. 전시가 진행되는 맹그로브 신설점의 701호부터 710호까지의 복도 간격은 성인 여성의 보폭 기준으로 다섯 보일 정도로 간격이 좁지만, 부스가 연달아 배치되어 있는 전시를 볼 때와는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간이 선반부터 캡모자 9개가 연달아 걸려 있는 걸 보고 706호 입주자(송시영 포토그래퍼)가 캡모자 수집가라는 걸 알 수 있고, ‘남양주산 쥐눈이콩' 그리고 봉인된 글라스에 담긴 절임 과일을 보며 703호 입주자(요나 셰프)가 비건 기반의 쉐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의 방은 그 사람의 세계가 맞다.


코리빙하우스 맹그로브 신설점 knock knock 전시 - 셰프 요나 Yona의 방


크리에이터 예진문은 자신의 방을 소개하는 영상 후반부에서 “맹그로브는 가구 맛집이에요" 라고 말한다. 이불과 커튼을 고르는 것은 철저히 입주자의 취향에 따르지만, 그 외 기본적인 셋팅은 모두 맹그로브의 몫이다. 맹그로브는, 비록 유학생 시절 짧게 머무는 공간일지라도 잘 자고 싶어 ‘잠'을 연구하기 시작한 창업가가 만든 수면 전문 브랜드 프로젝트슬립의 침대와 가구를 빌트인했다. 냉장고와 신발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에 수납된다. 방을 벗어나면 실생활에 필수적인 요리, 빨래 등을 위한 공용공간이 층별로 있고, 지하 2층 멤버십 전용 라운지에는 따로 또, 같이 사용할 수 있는 플렉스룸, 크리에이터스룸, 시네마룸, 릴렉스룸 등이 있다. 요컨대, 맹그로브 입주민들은 이 공간에 머무르면서 무슨 일이든 벌일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다.


묘목을 심으며 미래의 울창한 숲을 기약하는 사회혁신 비지니스가 있는가 하면, MGRV처럼 맹그로브가 상징하는 이미지를 도심으로 가져와 주거 솔루션을 제안하는 비즈니스도 있다. 열대 지역에서 자라며 여러 동식물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지구 온난화를 막아주는 유익한 나무 같은 공간을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 물론, 신설동역 8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고층 건물에 걸린 맹그로브 사이니지를 볼 때, 그 열대식물을 단숨에 연상하기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맹그로브’는 이제 막 도심 속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곳은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밀레니얼 1인 생활자들의 지지를 양분 삼아 앞으로 더 울창하게 자라날 것이다.


코리빙하우스 맹그로브 신설점


- 글. 서해인 에디터 / 사진. the blank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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