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스타트업을 선택하는 걸까?
나는 디자인학과 대학을 졸업하고 계속 스타트업을 선택했다. 32세가 된 나는 벌써 6번째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다. 대기업을 선택한 친구들과는 다르게 나는 당차게 꼭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싶은 데에는 나의 성격에 있다. 내가 어떠한 일을 할 때에 나 스스로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은 하고 싶지 않은 것. 누군가는 상사가 지시한 일이니까 그냥 하면 된다고 하지만 난 납득이 되지 않으면 그 일을 수행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그래서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스타트업을 가게 되었다.
입사 전, 나는 그래도 일머리가 있으니까, 대학 수업도 꽤 열심히 들었으니까 혼자서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과는 다르게, 첫 스타트업은 고난의 연속이 계속되었다. 디자인 담당자로 입사했지만 디자인 일만 할 줄 알았는데 기획도 하고, 영업도 하고, 마케팅도 하고, 영상 제작도 하게 되었다. 딱히 내가 저 일들을 할 줄 알아서는 아니었다. 그냥 인력이 부족해서 해야만 했다. 저 모든 일들을 잘 해냈냐고? 물론, 역시 처음이라 많이 부족했다. 그때는 그래도 내 뽕에 취해 처음치고는 괜찮다는 합리화와 함께 당당하게 내놓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가 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를 돌이켜보면 생각보다 즐겁게 일을 했던 것 같다. 다 새로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긴 했지만, 성취감이 엄청났고, 그 성취감들이 켜켜이 쌓여 돌이킬 수 없는 스타트업 세계의 길에 점점 딥하게 빠진 것 같다.
스타트업은 프레임이 씌어져 있다. 그 프레임은 '스타트업은 해당 직무 외에도 다 해야 하는 곳이야.' 그 말을 또 다른 말로 '스타트업은 직무 외에도 다 해볼 수 있는 곳이야.'라는 기회의 말로 해석이 된다. 나는 그래서 배우는 것에 치중하게로 했다. 디자인은 물론이고, 마케팅도 배우고, 제품 개발도 배우고, IR도 배우고... 될 수 있는 것을 다 배워보자 싶었다. 그렇게 배우다 보니 회사 가는 게 너무 즐거웠고, 돈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그만큼 더 값진 걸 얻고 있으니까... 그러다 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갔다. 그렇게 즐겁게 일하던 와중 내 전부 같았던 이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어 이직을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상실감은 굉장히 컸지만 이 배움들이 뭉쳐 나를 무장시켜줬다. 자신감이 충만했던 나는 뭐든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렵게 새 직장에 면접에 붙고 디자인팀 실무에 들어간 나는 경력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진 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격상 열심히 하긴 했지만 정작 담당인 디자인을 잘하지 못해 남들은 안 하는 야근을 밥먹듯이 했고, 주변 팀원 분들에게 계속 물어보느라 민폐를 끼치기 마련이었다. 보는 눈은 꽤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왜 좋은지에 대한 분석은 할 수 없었던 나는, '이렇게 해 보는 게 더 나은 것 같다'는 말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나는 후회했다. 많은 일들을 이것저것 다 해보는 게 중요하다며 목적 없이 해왔던 지난날을... 내가 이루고 싶은 방향이 뚜렷했다면 강약으로 업무에 대한 에너지를 조절해 지금의 더 나은 내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회사를 다닌 지 8년 차인 지금도 새로운 일들이 너무 많다. 빠르게 트렌드가 바뀌어 가서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운 회사로 가서 새로운 업무를 하고 또 익숙해 질만 하면 새로운 툴들이 나온다. 어렸을 때는 배우지 않아도 빠르게 익숙해졌는데 (심지어 그때는 유튜브 강좌도 없었다) 이제 나이도 먹어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게 정말 쉽지 않아 유튜브를 따라 하나하나 시도해 보고 또 까먹고 또 찾아보는 반복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접할 때 이제는 판단하면서 배우기 시작했다. 1회성에 그치는 일인가?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관련이 있거나 관심이 있는 일인가? 업무 효율에 영향을 미칠까? 이 일이 훗날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 경험을 통해 너무 계산적이게 된 것 같지만 이제는 이게 더 효율적이고 잘하는 일에 집중해 스타트업에서 더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난 계속 스타트업에서 일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