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짱구아빠 Aug 26. 2020

Plan.B. 차선. 20200731

함께쓰는 한 단어 『비』, 숭키님의 글


Plan.B. 차선. 20200731


여기 한 여자가 있다.

전날 밤, 다음날 일찍 일어나, 늦지 않게 준비를 하고 집 밖을 나설 것을 계획 했던 ...         


 

작고 대칭이 맞지 않는 네모난 방

햇살이 어디서 들어왔는지 추적하기 힘든 작은 틈이지만

오늘도 아침이 왔음을, 그것은 여전히 별일이 아니라는 듯 알리고 있다.       


   

미약하지만 정확하게 빛이 공간을 성실히 채우고 있을 때.          



30년의 삶이 지나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생명체의 

볼가에 닿았던 빛은 너무 약했던 것인지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것은 들숨 날숨 느리게 규칙적인 진동과 함께 기름기 가득한 얼굴로 너무나 평안하다. 



          

그런 여자가 눈을 떴을 땐

이미 늦어버린 아침이였다.           



‘집에서 나가야 하는 시간에 눈을 떠버리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자의 눈은 시계를 바라보고 있지만, 아직 인지하지 못했다.

시각정보를 인지하기까지 평소보다 긴 시간이 소요되는, 고장 난 몇초의 순간           



여자의 머릿속은 바쁘다.     



‘현실일리 없어’ 

‘x때따’ 

‘안 씻고 가면 늦지 않지 않을까?’ 

‘휴가를 쓸까?’ 

‘나는 지금 아픈게 아닐까?’           



실현이 가능하며 감당할 것이 가장 만만한, 최선의 선택을 고민한다.     


[안씻고 나간다면]

다소 늦거나 아슬아슬하게 도착은 하겠지만, 두상에 물에 젖은 김 마냥 달라붙어 있을 기름기 가득한 머리카락. 온몸의 미끈거리는 듯한 기분. 특히 아무리 팩트를 강하게 때려도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내려오는 화장. 그리고 직접 듣기야 힘들겠지만, 당사자 없는 어딘가에서 행해질 여자에 대한 심심치않은 비웃음과 뒷담화를 대가로 연차를 소비하지 않을 수 있다.          




[휴가를 낸다면]

일단 당일 아침 전화로 연차를 갑자기 낸다는 것에 대한 상사를 포함한 주변 동료들의 불편한 시선. 프로 의식 결여와 태도 문제 등을 꼬투리 잡아 대놓고 싫어할 여러 인간 군상들의 썪은표정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오늘 해놔야 하는 일들에 대해 대처하지 못했던 나, 그렇다고 누가 일을 대신 처리해줄 것은 당연히 아니고, 다음날 오면 해야 하는 일은 쓰레기처럼 쌓여 있을 것이 분명한, 게다가 나의 피 같고 금쪽같은 휴가가 잠으로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분노, 

하물며, 지금 당장 출근을 하지 않는다고 별다른 할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상황          




[여자는 반차를 내기로 한다]

씻을 수도 있고, 욕도 반만 먹을 수 있고, 일을 다 하진 못하되 반 정도 할수 는 있으며, 

금쪽같은 연차도 반만 사용하면 되는 그런 선택을 하기로 한다.          


여유롭게 씻고, 밥도 먹고, 조금이라도 화장이 잘 먹길 바라며 여자의 낯뜨거운 얼굴이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 얼굴에 분가루 타격하고, 조명을 흉내 내어 없는 빛과 색을 때려 넣어보자 다짐하며, 조금 여유있게 집을 나가 커피도 한잔 뽑아 들고, 회사로 향하리라 하는 자신을 위한 위안의 작은 보상도 잊지 않고 염두 하며,               




그렇게 일그러진, 실패한, 아침에 대한 분노를 잊기 위해 노력 한다.         



      

이 여자의 갑작스런 오전 반차는 어쩌다, 하루, 한번, 발생하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여자의 휴가는 아침잠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지 오래다.               



회사에 연락을 해야했다.     



‘일상과 회사가 분리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바램과 상관없이, 회사 사람들의 연락처는 노력하여 찾을 것도 없이 최근 통화 목록에 항상 있다.



통화를 할까 카톡을 할까 고민했지만, 불편한 이야기일수록 가깝게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많이 죄송해 보았던 N년차 직장인은 알고 있다. 현재의 불편한 마음이 훗날의 불어날 불편함보다 적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모래가루를 씹은듯한 마른입을 열어 통화버튼을 누른다.     



“부장님~아침부터 연락드리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아침에 하수구가 막혀서 화장실이 역류를 하고있어서요~ 수리업체를 만나고 가야할꺼같아요, 오전중에 처리하고 오후에 들어가볼께요, 과장님께 부탁해서 오전반차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네네..네네 “      

     


군더더기 없이 막힘없는 문장

정해진 시간보다 늦었다는, 룰을 어겼다는 사실과, 볼품없는 변명들로 스스로를 더 작아지게 하는 기분과 싸우며, 목소리는 작아지지 않게 노력하고, 차라리 그냥 늦잠 잤다고 말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 했다가, 오히려 변명이라도 하려는 모습을 덜 불편하게 보리라 판단 한다.    


 

이미 네가 이 시간에 전화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왜 전화했는지 다 알고 있고,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는 말투와 대답들 이였지만, 이미 녹음해둔 녹음기를 틀은 것 마냥 여자는 해야 하는 말을 다 하였다. 꼭꼭 씹어먹듯.          


이쯤 되면 통보지만, 여기까지 해두면 마음이 다소 홀가분하다.      


    

갑자기 늘어난 출근 준비 시간에 

여자는 내가 왜 이 회사를 다니고 있게 되었는지 생각한다.                    



공부를 조금 더 열심히 했었더라면, 지금보다 나은 어딘가의 졸업장으로,  


                        

좀 더 나를 인격적으로 대우해주는 회사에서 구태연 하게 시간에 구속받는 것이 아닌 업무 단위로, 나를 이야기 할수있는 지금보다 좋은 환경에 나를 노출 시킬 수 있었던 걸까 ?      



    

여자가 생각했던 최선의 도착지들에 여자는 다다른 적이 없다.      

         

인생은 최선의 선택지가 아닌 선택들로 가득했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를 인정하고 싶지않은 좌우명으로 주먹구구식의 인생을 살아내고 있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그 사실이 매번 여자를 괴롭혔다.          



원했던 이상을 잡은적이 없다는 사실과. 현실에서는 하루를, 지금을, 엉망진창으로 모면을 위해서만 채워지고 채워져 버린 시간에 대한 후회. 이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조금만 정신을 차리거나 뒤돌아보면 거대한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는 감정이 그녀의 그림자보다 가까이 늘 존재하고 있었다.  



    

그녀는 목덜미가 서슬 파래지는 것을, 발아래가 땅으로 꺼져가는 것을, 지구의 중력이 늘어나는 기분을 느끼자 의식적으로 샤워기를 틀어 물이 몸에 닿아 뜨겁거나 차가운 촉감으로 고개를 돌려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          



아, 출근해야지





Written By. 숭키






독서모임, 우리들의 인문학 시간

https://blog.naver.com/ysgravity3659/221775696915


우리들의 인문학 시간, 글쓰기 모임

https://brunch.co.kr/@thebooks/169


매거진의 이전글 비 오는 날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