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쓰는 한 단어 『일상』, 개미님의 글
몇 해 동안 일없이 살았다. 그러니 딱히 일상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하는 일이라고는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주식창을 기웃거리거나, 아무도 읽지 않는 글 따위를 끼적이는게 전부였을 뿐이다. 그나마도 건너뛰는 날이 더 많았으니... 그때의 일상이란 쉬이 들지 못하는 잠을 억지로 청하는 것과 하릴없이 하루를 허비한 뒤, 다시금 간절히 잠을 청해보는 일의 반복 말고는 없었던 것 같다.
문득 돌이켜보면 20대의 일상이란 것은 항상 지치고 피곤한 것들뿐이었다. 하고 싶지 않은 공부를 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고, 하루하루 근심과 어지러움 속에서 보냈던 불면의 날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서글펐던 그런 날들. 내 고민과 불안은 남들에게 배부른 걱정이거나, 또다시 도진 자격지심, 신세 한탄 정도로밖에 치부되지 않았던 날들.
그 허무와 회의 속에서도 어떻게든 삶의 중심을 잃지 않으려 시작한 것이 독서였고, 담을 수 없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끄적이려 시작했던 것이 글쓰기였다. 책에 파묻혀 위로받고, 글을 쓰며 게워내는 묘한 상쾌함으로 버텼던 날들이었다. 그러니 그때 내게 책과 글이란, 아프고 지친 일상을 그나마 한 걸음씩 내딛게 해줬던 목발과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일을 시작했다. 덕분에 다시 일상이 생겼다. 규칙적으로 잠을 자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휴일을 기다리며 출근을 하고 있다. 퇴근 후에는 밀린 공부를 하는 것으로 시간을 채운다. 잠이 부족한 탓에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볼 시간도 거의 없다. 밤이 되면 몰려오는 피로에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전에 없던 기상 알람을 들으며 하루가 시작된다.
단조롭고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20대와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그때와는 다른 안정감과 질서가 내 일상을 지탱해 주는 기분이다. 이제 더 이상 병적으로 책이나 신문기사들을 찾아 읽지 않는다. 주체할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을 풀어보려 글을 쓰지도 않는다. 백수 시절처럼 불면과 초조에 휩싸여 있지도 않다.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수다를 떠는 삶. 그렇게 거창할 것 없는 일상으로 마음속 공허함들을 채워 나가보려 한다. 떨쳐버릴 수 없는 삶의 허무와 회의는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쫓아다닐 명분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어차피 죽으면 끝인 삶. 힘들게 살 필요가 있나.’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나를 구속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괴롭고 맞지 않는 것들은 과감히 던져버릴 각오를 다지면서 말이지...
평범하지만 조금은 기다려지는 게 있는 일상. 그래, 인생 뭐 있나.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