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쓰는 한 단어 『일상』, 한유님의 글
초등학생 때 글쓰기 대회에서 ‘물과 공기는 늘 옆에 있어서 소중한지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라는 문장을 본 기억이 있다. 그땐 ‘맞아 그렇지!’하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당연한 것에 대한 감사함만큼이나 영혼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 있을까 싶다.
살아있는 모든 이들이 초등학생처럼 ‘옆에 있는 것들에 감사해요!’라는 문장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면 더 행복한 세상이 올까. 그러기엔 ‘본인이 책임져야할 일을 나 몰라라 하는 상사’가, ‘왜 해야하는지 설명하지 못할 업무들’이,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 것인지의 고민이, 눈 앞의 그 모든 위기가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덮어버린다.
하지만, 흔히 간접적으로 알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고 질병이 퍼질 때 가장 먼저 파괴되는 것은 사람들의 일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내가 좋아할 말들을 찾아 영화와 공연을 보러가고, 머리 속으로만 그렸던 곳을 실제로 눈에 담아보는 일도 생을 넓게 보면 반복하는 일상인데 ‘이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구나’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일상을 잃어버리는 위기 앞에 아이러니하게도 그간 누려왔던 것들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게 된다.
‘뉴노멀’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일상이 온다는 의미인데…개인적으로 뉴노멀은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겪고 있는 것만 같다. 함께했던 연인과의 이별, 오랜 친구와 벌어진 거리, 가족 내의 아픔 등 어찌 보면 일상을 파고드는 이벤트는 생각보다 많다. 어디에선가 이별 후엔 ‘일상으로 돌아간다’ 라고 표현하는걸 들은 적이 있지만, ‘새로운 일상에 적응한다’ 라고 표현되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누군가와 헤어지고 난 다음은 그 전과는 분명 다르니까. 꺼려지는 장소가 생기고, 불편해지는 말들이 생기니까.
일상의 속성에는 반드시 ‘반복’과 ‘익숙함’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두 눈을 뜨고 일어나기 싫은 자아와 치열한 전투 끝에 세수하는 과정은 일상이 된다. 출근하는 길 집을 나오기도 전에 ‘집에 가고 싶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각도 일상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상이 아닌 것을 열망할지도 모르겠다. 길을 가다 돈을 줍고, 상사가 며칠씩 부재하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 내가 외계인이 아니었구나 깨닫는 것들 말이다.
지금 문득 바라게 되는 것은 ‘이 글을 쓸 수 있고, 회사를 옮길지 고민할 수 있고,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가족, 친구들이 있다’는 일상이 일상의 속성에 가려지지 않는 것이다. 반복적이고 익숙하다는 속성과는 반대로 이 일상이 매우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이 모든 고민과 불안을 이기기를 바랄 뿐이다. 그때 비로소 일상은 일상의 한계를 넘어 그 고귀한 가치를 찾을 수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