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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Aug 01. 2019

『총, 균, 쇠』, 제레드 다이아몬드

Review by. Operarius Student

함께 모여 책을 읽고 서평을 씁니다. 모두의 독서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북클럽 #책갈피



 일전에 학위논문에서 전시체제기 강제동원 조선인 노무자들의 노동재해를 다루면서 어쭙잖게도 '위험의 불평등-사고의 편향-책임의 전가'라는 모델을 제시했었다, 설익은 모델의 적실성과 별개로 논문에서는 '불가항력', '우연', '미상' 등, 즉 원인을 인간의 외부에서 찾는 작업이 위의 일련의 과정 내부에서 작동하는 양상의 함정을 지적했었다, 이러한 발상의 실마리를 제공했던 책 중에 하나가 바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였다,



사실 대중 사이에서도 너무 유명한 책이고, 전공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준 책이라 감히 덧붙일 말이 있겠냐마는 개인적으로나마 이 책을 바라봤던 시선의 궤적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다시 책을 꺼내보았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례들의 부피가 워낙 방대한 터라 사례들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하지 않고, 이 책의 집필 배경, 문제의식을 알 수 있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만 볼 것이다, 그리고 실패한 정치인 성공한 방송인 유시민과 미국의 역사지리학자 제임스 M. 블로트의 책 일부를 참고할 것이다,  


먼저, 유시민이 '총, 균, 쇠'의 내용을 잘 요약해두었기 때문에 그대로 인용해본다,


"각 대륙의 역사가 서로 크게 달라진 것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타고난 차이가 아닌 환경의 차이 때문이었다. 인간 사회의 궤적에 영향을 주는 환경적 요소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은 네 가지였다. 첫째, 가축이나 작물로 삼을 수 있는 야생 동식물이 대륙마다 다르게 분포했다. 둘째, 확산과 이동의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대륙마다 달랐다. 유라시아는 주요 축이 동서방향이고 생태적‧지리적 장애물이 비교적 적어 이동이 쉽고 확산이 빨랐다. 셋째, 대륙마다 고립도의 차이가 있었다. 남북아메리카와 호주는 고립도가 높았다. 넷째, 대륙의 면적과 인구가 달랐다. 면적이 넓고 인구가 많으면 잠재적 발명가의 수, 경쟁하는 사회의 수, 도입할 수 있는 혁신의 수도 많다. 이 네 가지 환경 차이는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으며 논쟁의 여지가 없다."

(역사의 역사, 296쪽)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특징 두 가지는, 첫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현대 세계의 불평등의 궁극적 원인을 환경의 차이에서 찾고 있고, 둘째, 그는 이 환경의 차이가 논쟁의 여지 없이 객관적이라고 본다는 점이다,



 본디 고생물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자연과학 분야, 특히 생물학에서의 성취를 적극 끌어와 인류의 역사를 설명한다, 인류 역시 환경의 지배를 받는 하나의 종으로 보고, 자연과학에서 으레 하듯 특정 종과 환경 사이 상호관계를 자명한 논리로 매끈하게 풀어낸다, 이 책이 여전히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기존의 역사 관련 서적과 달리 방대한 시공간를 꿰뚫는 명쾌한 핵심을 풍부하게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이 책은 비서구권 학자들의 숙원인 유럽중심주의 극복의 단초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근대 이후 서구와 서구 이외의 지역은 제국과 식민지라는 극적인 희비로 엇갈렸다, 그리고 엇갈린 운명을 결정지었던 핵심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설명하려는 시도가 항상 있어왔다, 베버와 맑스라는 태두 이후 확대재생산되어온 동양의 문화적, 역사적 정체는 궁극적으로 인종적 열등성을 가리키고 있다, 이미 서구에서 생산된 지식 체계가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전복하기란 여전히 지난한 일이다,


 그런데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의 불평등의 원인은 결코 인종적 열등성 때문이 아니라 우연히 설정된 지리적 위치 탓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설명에 절대적인 권위까지 부여하고 있으니 비서구권에서 귀가 솔깃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유럽중심주의를 극적으로 전복할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나 역시도 4,5년 전에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고 있다,






한편, 제임스 M. 블로트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을 환경결정론이라고 규정하고, 다이아몬드가 엄연한 문화적 차이를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의 거대한 관점이 안고 있는 세부적인 모순들을 짚어내며, 그의 주장에 직접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가설 자체의 과학적 오류나 가설 내부의 논리적 상충 등을 예리하게 지적하며, 기실 그 역시 유럽중심주의에 따르는 '유로 환경결정론자'라고 주장한다, 블로트의 반박은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비판과는 결이 약간 다르기 때문에 이 정도만 제시하고, 블로트가 제기하는 비판의 자세한 내용은 '역사학의 함정,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한다'의 8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블로트처럼 다이아몬드의 주장을 직접 정면으로 반박하는 작업도 의미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보다 근본적으로 다이아몬드의 주장이 내포한 위험성, 즉 유럽중심주의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우려를 지적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럽중심주의를 전복시키려는 사람들은 이미 보편으로 자리매김한 유럽의 역사적 특수성이 본디 비서구 지역에서도 있었다고 간주해 그러한 유사성을 찾아내거나, 나아가 오히려 비서구 지역에서 우월, 선취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오리엔탈리즘'을 역으로 뒤집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바꿔 말해 어느 문화, 어느 인종이 더 우월한지 겨루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편향성(보다 노골적인 표현인 인종주의)를 비껴가면서 불평등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인자가 오롯이 인간 바깥에 위치한 환경이다,



 다이아몬드는 이 환경이라는 인자에 인간 사회가 종속된다고 볼 정도로 그 영향력을 결정적으로 간주했다, 그렇기 때문에 유시민의 말마따나 어느 대륙 어느 문명에 대해서도 특별한 호오의 감정을 표출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처럼 '인간의 자연화'에 전제로 하면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구조 안에 집단화된 인간을 밀어넣음으로써 역사를 안정적으로 서술할 수 있다, 안정적이라는 표현은 일견 바람직해보이지만, 기실 위험한 표현이다, 역사의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헤치는 과정에서 논리적 설명이 난관에 봉착할 때 항상 어딘가에 기댈 수 있다는 말이다, 예컨대, 근대 이전에는 신이 그러한 역할을 했었다, 역사란 사실에 기반하여 차근차근 인과를 밝히고 경과에 대해 평가를 하며, 나아가 책임을 묻는 작업까지 일컫는 말일텐데, 여기에 '신'이 개입되면 역사가 편의적으로 서술되고 역사가가 게을러지기 십상이다,



 신이 세속화한 지금,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신'의 빈 자리에 우연, 운을 밀어넣는다, 현재의 불평등이 순전히 우연에 의해 엇갈렸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 지리적 위치란 이미 주어진 우연적 조건이다, 결정적이지만 우연적인 이 조건의 결정 또는 변화에 과연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가, 비약을 더하자면 이는 '신'의 선택인가, 이처럼 결과의 궁극적 원인을 인간 바깥의 미지의 영역에서 찾음으로써 현재의 결과가 '원래' 그러한 것, 자연스러운 것이 되고 만다, 이러한 서술은 자칫 인간의 행위로 인한 책임에 면죄부를 줄 여지가 있다,



 책임 소재를 논하기가 애매하기 때문에 역사 속 무수한 비극들이 거대한 흐름 속 작은 에피소드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다이아몬드의 서술이 눈에 띄게 냉정하고 건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프롤로그에서 원인의 설명과 결과의 승인을 혼동하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원인을 설명함으로써 인과의 사슬을 끊어낸다고 말하고 있지만 다소 의아하다, 그는 과학이라는 가면을 쓴 우연, 즉 '절대적' 원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인간의 인식이 닿지 못하는 저 너머에 원인을 설정해두고 인과의 사슬을 끊겠다는 포부는 앞뒤가 맞지 않다, 인간의 책임을 무화하는 역사서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합리화는 윤리적 공백을 남겨둔 건전하지 못한 역사인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이 왜 하필 '총, 균, 쇠'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총과 균과 쇠는 서로 다른 대륙 간 기술 격차가 현저한 상태에서 어느 한 쪽으로의 진출에 있어서 첨병 역할을 했던 요인이었다. 다시 말해 현재의 극단적인 불평등의 직접적인 원인인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반드시 죽음을 수반한다. 여기서의 죽음이란 1인, 2인의 사망이 아니라 수백, 수천만의 절멸을 뜻한다. 대륙 간 위계의 정립 과정은 곧 잔인한 추방과 학살의 역사이며, 피지배민들의 붉은 피로 얼룩진 서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아몬드는 매우 거대한 시공간을 건조하고 담백하게 무채색으로 풀어냈다.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는 신탁에 따라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했다.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었다.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고, 자신의 능력으로 벗어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충격과 고통 속에서 스스로 두 눈을 찔렀다. 오이디푸스의 행동은 결정된 운명에 대처하는 인간의 한 예로써, 축복받은 유라시아, 성공한 서구에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 오이디푸스와는 판이하게 이 책은 뻔뻔하리만치 너무도 당당하게 책임의 전가 내지 무화(無化)를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 과학적으로 거대한 역사를 분석해 현재의 불평등의 기원을 밝혀낸 다이아몬드의 앞에는 중대한 갈림길이 놓여있다, '따라서' 현재의 불평등은 바로 그 우연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불평등에 서구는 응당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라는 갈림길 위에 선 그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우연'이라는 표현이 내포한 정치성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와 별개로 에필로그에서 언급한 역사적 과학과 비역사적 과학의 대조는 눈여겨볼만 하다, 방법론, 인과관계, 예측, 복잡성을 들면서 역사적 과학의 개념을 소개하고 가능성을 전망하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의 와중에 역사학의 본령을 기어코 움켜쥐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곰곰이 생각해볼만한 내용이다,

                                                                                                                                  by. Operarius Stu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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