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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Aug 04. 2019

『여행의 이유』, 김영하

Review by. 기욤 민지

 

함께 모여 책을 읽고 서평을 씁니다. 모두의 독서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북클럽 #책갈피


이 책은 동네책방 에디션이 표지가 맘에 들었다. 그래서 4월에 한정판처럼 힘들게 구했다. 손에 책을 자주 들고 다니는 나에겐 책도 ‘패션’이다. 예쁜 책이 원피스랑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일찍 구했지만, 5월 말 제주 여행을 위해 아껴뒀다. 비행기 타는 순간부터 《여행의 이유》를 읽기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직장인 8년차, 처음으로 6박 7일을 떠나보았다. 다. 첫 장기휴가라서 ‘의미 부여’하고 싶었나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 책에서 찾아보려고 했다. 내 여행에 ‘특별함을 부여’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나만의 여행의 이유를 깨닫기 위 해, 이번 여행만의 이유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1. 담담하게 삶을 살아가는 방법 


p,16 “작가의 여행에 치밀한 계획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이 너무 순조로우면 나중에 쓸 게 없기 때문이다. 음식이 운 좋게 맛있어서 좋고, 대실패를 하면 글로 쓰면 된다.”

p.18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 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p.22 여행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뜻밖의 사실'이나 예상치 못한 실패, 좌절, 엉뚱한 결과를 의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p.23 우리의 인생에도 언제나 외면적인 목표들이 있다.(좋은 대학, 좋은 결혼, 좋은 가정, 집 소유, 좋은 육아 등) 그런데 이런 외면적 목표를 모두 달성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능력보다 더 높이 희망하며, 희망했던 것보다 못한 성취에도 어느 정도는 만족하며, 그 어떤 결과에서도 결국 뭔가를 배우는 존재다.

p.24 야구 선수를 희망했던 아이들은 '마이너리그' 꿈을 갖고 시작하진 않는다. 그러나 메이 저리그로 진출하는 것은 매우 일부, 원래 추구한 것(메이저리거 되기)과는 다른 것을 얻었지 만 자기 인생을 살아냈다. 경기에 출전해 최선을 다했고, 사랑하는 파트너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은퇴한 후에는 코치가 되었다.

p.25 다만 순서가 살짝 바뀌었을 뿐 아닌가? 결과만 보면 크게 상관이 없을 정도.

 

 그렇다. 여행은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 의도했던 것처럼 순조롭지만은 않다. ‘뜻밖의 사실’을 마주했을 때, 내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넘어갔다면 글감으로 써버리면 된다. 어쩌면 이 한문 장은, 삶을 담담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게 아닐까? 저자의 ‘그래도 된다.’, ‘좀 바뀌면 어때?’, ‘꼭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표현이 나에게 위로로 다가왔다. 삶이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좌절하게 된다. 내 계획과 목표는 ‘메이저리그’ 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해피엔딩’을 꿈꾸지만,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새드 엔딩’을 기획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언니가 “민지야. 삶은 어차피 내뜻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 좀 나을거야.”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20대 초반에 들었던 이야기라, 속으로는 ‘너무 부정적인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부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실은 긍정적인 말이었음을 요즘에서야 깨달았다. 항상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방법, 그리고 내 뜻대로만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인정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었다. 크고 작은 위기를 담담하게 이겨내는 ‘꿀팁’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대부분’이라 고 받아들인 지금은 매사에 벌어지는 일들을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매 순간 감사하게 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렇다고 계획을 세우지 않고, 부정적으로 생각을 하라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이는 힘을 이야기하고 있다. 계획대로 되지 않으며,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좌절하고 슬퍼하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서 다시 나만의 인생을 살면 된다. 때론 ‘뜻밖의 사실’이 펼쳐지는 덕분에, 삶이 ‘희망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 나만의 ‘여행의 이유’를 찾아서 


p.63-65 집은 의무의 공간이다. 언제나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띈다.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 처가 있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여행'의 필요성을 느낀다.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p.68 기억이 소거된 작은 호텔방의 순백색 시트 위에 누워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느 낌에 사로잡힐 때,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설 에너지가 조금씩 다시 차오르는 기분이 들 때, 그 게 단지 기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마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 나의 ‘여행의 이유’는 내 일상과의 일시적 격리를 하기 위함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 자신과 나의 삶을 조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내 일상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아니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바라보곤 한다. 가끔 내 일상이 특정 상황(주로 스트레스 상황)에 물들면 마치 그게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여행자 모드로 잠깐 나와서 그 상황을 바라보면 그 스트레스 상황 또한 미미할 뿐이다. 


 즉, 숲 속에서 나무 한 그루의 그늘이 내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면, 숲을 바라보 기 위해 일부로 헬기를 타고 나와서 숲 속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내 일상에서 나를 객관적으 로 바라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상과의 격리’를 위해 여행한다. 그 격리로 인하여 부정적인 것들에 물든 생각의 노폐물을 비우고, 다시 또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가며 현재를 살 아갈 수 있게 해 준다. 내 삶이 reset 된다. 마치 호텔방의 순백색 시트 위에 누운 것처럼.


3. 환대는 곧 사랑, 베푸는 태도가 nobody에서 벗어나는 방법 


p.147 여행지에서 환대를 받은 경험, "나중에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에게 갚으면 된다." 환대는 이렇게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 정한 가치가 있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 얼마 전에 읽은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배웠다. 환대 또한, 인간에 대한 사랑 아닌가. 사랑을 주고 나면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사랑의 에너지는 전달되 니까. somebody에게 받은 환대를 anybody에게 환대로 갚는 것. 그것이 바로 nobody가 되지 않는 방법이 아닐까? 사랑이 돌고 도는 따뜻한 세상에서 말이다.






 김영하 작가님의 문장은 평범한 일상을 무릎을 탁 치는 표현으로 묘사하여 공감을 끌어낸다.


문장 하나로, 평범함을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해준다. 그리고 문체에서 자만이 전혀 없다. 나 또한 모두와도 같은 인간이다는 것을 보여준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솔직하게 털어놓으니 말이다. 그래서 책이 부담 없이 읽혔다. 나는 특히 이 책의 앞부분이 참 좋았다. 작가가 여행을 대하는 태도, 즉 삶을 살아가는 태도 가 엿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라는 작 가의 말처럼 책 제목은 여행의 이유지만, 여행을 통해 삶의 이유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외에도, 마음에 새겨진 문장들 


p.71-72 모든 기억은 과거를 편집한다. 뇌는 한 번 경험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잊지 않는다고 한다. 엄청난 양의 정보들 중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만 적당히 편집해서 남기고 나머지는 어딘가에 던져두는 것 같다.

p.81 생각과 경험의 관계는 생각을 따라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생각으로 정리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다시 움직이게 된다.

p.82 여행은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 려다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라고, 다시 현재를, 오직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p.97 모든 여행은 끝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게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by. 기욤 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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