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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Aug 22. 2019

숨그네, 헤르타 뮐러

Review by. 북치는소녀

 

함께 모여 책을 읽고 자유롭게 글을 씁니다. 모두의 독서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북클럽 #책갈피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내가 일제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것도 일제의 폭거가 한창일 때 태어났다면. 먼 과거까지 안 가도 된다. 내가 지금 한국이 아닌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신념이나 가치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것도 아니면 그냥 태어나자마자 갖게 된 집안의 배경에 따라 차별 받다 결국 수용소로 끌려 가는 상상을 해본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떤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갈지를.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그런 상상을 영화처럼 생생하게 보여준 소설이었다. 소설은 1945년 루마니아를 점령한 소련이 나치에 파괴된 소련을 재건한다는 명분으로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독일을 수용소로 강제 이주시킨 것을 배경으로 한다. 숨그네의 주인공도 이 때 수용소로 이주한 사람들 중 하나로 수용소에서의 생활과 집으로 복귀한 뒤의 느낌을 전하고 있다.  




#나는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

“작은 보물이란 나 여기 있다라고 적힌 것들이야. 그것보다 조금 큰 보물은 아직 기억나니라고 적힌 것들이고. 그러나 무엇보다 큰 보물은 나 거기 있었다라고 적힌 것들이지”

“그사이 나는 내 보물들에 나 거기 머문다라고 적혀 있음을 알게 됐다. 수용소는 머릿속에서 자신을 확대시킬 거리를 확보하려고 나를 집으로 보냈다. 고향에 돌아온 후로 내 보물에는 나 거기 있다는 물론 나 거기 있었다라는 말도 적혀 있지 않다. 내 보물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



 수용소 생활 내내 함께 했던 배고픔, 타인의 죽음 앞에 자신의 삶만을 생각하며 사자의 옷을 벗기던 생활... 주인공은 오랜 수용소 생활이 끝나고 집에 복귀했지만 완전히 수용소 생활에서 벗어나는 데 실패한다. 수용소에 있을 때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는 게 큰 위로가 된다. 수용소 생활이 길어지면 과거에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이 위안이다. 무엇보다도 제일 큰 행복은 수용소에서 나와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기억하며 이제는 ‘추억’이 되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이미 수용소에서 겪은 폭력이 나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된 탓이다. 


 비단 수용소만 그럴까. 온갖 사회적 편견과 관행에서 가끔 이건 너무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 폭력에 부딪치고 나름 반사하며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내면화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끔찍한 경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을 느낄 때도 있었고 정글 같은 현실을 몰랐던 어린 시절을 그래도 기억하며 씁쓸했던 적도 있었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 나는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 나도 ‘선배’ ‘꼰대’가 돼 있고 ‘어쩔 수 없다’는 이유에 숨어 똑같은 행동을 한 적도 있을 테다. 




#절대영도 사이 그네 타기

“입의 행복은 먹을 때 오고 입보다 짧다. 입이라는 단어보다도 짧다. 소리내어 말하면 머리로 갈 새도 없다. 입의 행복은 입 밖으로 말해지길 원치 않는다. 입의 행복에 대해 말하려면 모든 문장 앞에 갑자기라는 말을 써야 한다. 그리고 이런 문장으로 끝맺는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모두 배가 고프니까.”



 수용소 생활은 배고픔을 떼어놓고 말하기 어렵다. 항상 배고파서, 너무 배고파서 음식을 먹는 그 찰나에 행복을 느끼고 사라지는 그런 생활은 소설에서 더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한계상황 ‘절대 영도’로 표현된다. 먹기 위해 일을 하지만 그 대가로 주는 음식은 늘 부족하고 결국 배고픔을 잊기 위해 다시 일하는 쳇바퀴.

누구에게나 절대영도의 무한 반복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 일들이 있을 거다. 빠져나오기 위해 하는 모든 행동들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하는 경험들. 돈 벌기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고시원에 살면서 일하다 화재로 몸만 겨우 빠져나온 사람이 떠올랐다. 그 분도 앞뒤로 밀고 있지만 결국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그네를 탄 기분이었을까. 



소설에서 나오는 표현은 처연하고 함축적이고 아름답다. 가령 책에서 주인공은 동물인형을 생각하다가 복종을 떠올리고 이어 음식을 떠올리다 잠에 빠진다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동물인형-복종-음식 모두 비슷한 단어로 발음된 탓이다. 수용소 현실과 이를 묘사하는 글 사이에 간극이 크다. 생의 의지를 주는 소설은 아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아슬아슬하게 그네를 타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리뷰작성자 : 북치는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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