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북클럽 모임 기록, 2019년 8월 열아홉번째 만남
#1. 기억조차 없는 어린시절은 서울에서, 초중고등학교 시절은 정읍이라는 도시에서 살았다. (모르는 사람이 많을까봐 이야기 해두면, 정읍은 읍邑이 아니라 시市다. 조선시대에는 아주 잘나갔던 도시라고 한다... 초딩 때 동네 어르신께서 알려주셨다…)
정읍은 내게 학창시절 추억이 가득한 공간이다. 대학진학을 위해 서울로 상경한 뒤로부터 정읍시 인구는 꾸준히 감소해왔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가도 상전벽해 같은 느낌이 없다. 부분부분 달라진 곳들이 눈에 띄지만 많은 곳이 눈에 익다.
안쓰던 택지들이 개발되고 다니던 학교 건물들이 달라졌어도 정읍은 항상 그곳에 있는 것 같다. 분명 사는 사람들도, 다니던 가게와 동네도 꽤 많이 바뀌었는데 말이다.
서울은 20살때부터 살게 되었다. 그러니 올해로 대략 12년 정도가 지났다. 그 동안 서울은 참 많이 변했다. 단순히 외관 뿐만 아니라 도시의 문화적 요소도 많이 변했다. 거기에 익선동, 연남동, 을지로 등등 상권의 지형도 많이 달라졌다.
전면적인 개발이 된 곳도 많다. 상암과 마곡에는 업무지구가 들어섰다. 일산에서 건대까지 등교길에 봤던 가좌동과 수색역 근처는 지금은 완전히 다른 동네다. 학교 근처라 몇 번 가봤던 서울숲은 어느새 신흥부촌이 되었고, 군입대 전 살았던 구파발 인근은 삼송-원흥-지축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개발이 진행 중이다.
서울이란 도시는 분명 역동적이고 활력이 있는 곳이다. 뭐랄까,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다고 할까. 서울. 이 곳은 분명히 빠이팅이 넘치는 도시다.
#2. 책을 읽으며 도시를 많이 돌이켜 보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속에 담겨있는 건물이나 공원같은 공간들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난 솔직한 소감은 ‘오, 그럴싸 하다. 그런데.. 이렇게 될까…?’ 정도인 것 같다. 책의 많은 부분들이 일종의 사고실험 같아 보였다. 그래서 저자의 주장을 적용했을 때 어떻게 될 지 궁금했다.
그의 말대로 골목길의 형태는 남긴 채 개발이 이뤄지면 기존의 전면재개발과는 다를까? 계단을 외부환경에 노출시켜 설계하면 그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쉼터가 되어줄까?
아직 현실에서 적용된 걸 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다만, 필자의 건축철학에는 많은 부분 공감이 갔기에 그 시도를 응원하고 싶다. 상상과 실제는 같을리 없겠지만 변화의 시도 없이 이루어지는 진보란 없는 법이니까.
#3. 빠이팅 넘치는 도시에 사는 빠이팅 없는 인간이라 그런지 서울이 답답하게 느껴지곤 한다. 나이가 들면서 실내생활도 많아지고, 집에 와서는 씻고 누워 핸드폰을 보고있는게 대부분이다. 집 앞에 있는 공원도 잘 안 가게 된다. 뒷산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와중에 책을 보면서 몇가지 기억들이 떠올랐다.
숨막히는 재수학원에서 옥상정원에 올라가 느꼈던 해방감. 고등학교 교실 베란다에서 바람을 맞으며 나누던 잡담들. 떨어지는 노을과 함께 좋아했던 사람과 걷던 뚝방길. 천장 높은 카페에서 읽었던 책들. 대학 시절 참여했던 독서모임과 한강나들이 등등… 돌이켜 보면 내 삶을 풍성하게 채워준 순간들이었다.
이제는 어느 순간 멀어져 버린 감정들이지만 그 때의 여운들은 고스란히 내 마음에 남아있다. 공간과 건축을 통해 이런 순간의 빈도가 늘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