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북클럽 19년 4월, 열다섯번째 만남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김영민 교수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유명해진 지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책 설명에 김영민 교수가 지난 10여 년간 근심하고 애정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는데 제목부터 불쾌하여 마음에 들진 않았으나 독서편식으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인지 모임에서 이 책이 선정되었고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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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사실 심상치 않음을 느끼긴 했다.
아침부터 내 죽음을 생각하라니.. 눈뜨고 정신차리고 출근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럴 겨를이 있나.. 언제 죽을 지 모르니 열심히 살라는 건가..
대체로 그렇게 생각할 지 모르나 작가는 정말 위트있게 생각한다. 이미 죽어 있으면 제때 문상을 할 수 있고, 죽음이 오는 중이라면 죽음과 대면해 놀라지 않을 수 있고.. 또 그는 행복한 삶보다는 소소하게 불행한 삶을 꿈꾼다.. 김영민 교수는 어떤 것의 '의외성'을 잘 캐치해 위트있게 표현하고 생각하는 데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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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전반을 보면 일상, 학교, 사회 등에서 일어나는 무수히 많은 일들을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그 상황의 의외성에 주목하고 그로 인한 깨달음을 글로 표현했다.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곧 작가의 글이 주는 매력에 깊이 빠져버렸다.
그가 유명해지게 된 추석이란 무엇인가부터 설거지의 이론과 실천, 노예가 되지 않는 법, 위력이란 무엇인가, 칼럼을 위한 칼럼 등 인상깊은 이야기들은 아주 많지만 그 중에 한 가지만 꼽는다면, '2월의 졸업생들에게'를 꼽고 싶다. 기존에 내가 졸업식에서 듣던 축사와는 전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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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같이 귀중한 것을 낭비해버리는 것은 그 나름 쾌감이 따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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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을 낭비한다고 표현하다니..그리고 그는 쾌감이 따르는 일이라니.. 사실 처음엔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한 살 한 살 먹고 얼굴에 노화의 기운이 깃드는 것이 싫어서 어떻게든 젊음을 붙잡으려 노력하는데..
가차없이 그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얘기하는 게 와닿지는 않으면서도 그래도 이해는 됐다..
생각해보니 대학생 새내기 때를 돌아보면 귀중한 것들을 과감히 소비한 것 같긴 하다..
학창 생활은 그렇게 귀중한 자원을 소비하기에 평가받는 것은 마땅하다고 한다.. 그럼 무엇으로 평가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현실에서 타인과 사는 일의 고통과 영광을 얼마나 잘 겪을 마음의 준비, 즉 정치적 덕성을 습득했는가이다. 나는 과연 잘 습득했을까.. 아직은 푸딩같이 무른 멘탈을 가지고 있어 잘 습득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노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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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근본적인 평가 기준은 누가 좋은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인데, 잠깐 생각해 보아도 좋은 인생 이야기에는 그의 말처럼 용기와 도전이 아주 필수적인 것 같다.. 안정적인 걸 추구하고 간도 콩알만해서 큰 일에 대한 용기가 부족한 편인데.. 매일 아침 죽음을 생각하면서 내가 좋은 인생 이야기를 꾸리며 살고 있는가를 그려볼 때 내 자신이 부끄럽지만 않으면 될 것 같다.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삶도 살아야 겠지만
여러모로 내 주변의 일들을 나도 한번 의외성을 가지고 살펴보게 하는데 도움을 준 책이다. 아직도 아침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즐거운 일일지에 대한 의문은 남지만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있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부정행위의 용인이 쌓이고 쌓이자, 그 적폐는 관행이 되었으리라. 급기야는, 그 관행에 한통속이 되지 못하면 오히려 상대적 손해를 보게 되었으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부정행위가 관행을 넘어 정의의 반열에 올랐으리라.(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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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선택을 하거나 권위를 창출할 때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숙의 과정은 그 선택과 권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 정당성을 잘 표현된 글을 통해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을 때, 구성원들은 비로소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이다.(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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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력이 왕성하게 작동할 때, 위력은 자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위력은 그저 작동한다. 가장 잘 작동할 때는 직접 명령할 필요도 없다. 니코틴이 부족해 보이면, 누군가 알아서 담배를 사러 나간다.(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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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인류가 발명한, 사람을 경청하게 만드는 정말 많지 않은 매개 중 하나죠. 그렇게 경청하는 순간 우리가 아주 조금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겁니다. 자기를 비우고 남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자세요.(p.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