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성을 지켜야 하는 힘든 싸움
개정된 백수의 정의(앞의 글 '백수의 정의' 참조)에 따르면, 난 2년 넘게 백수이다. 내 아무리 목사이고 자존감이 높다 한들, 돈이 곧 능력이라는 자본주의의 거대한 장벽 앞에선 범 앞에 하룻강아지일 뿐이다. 범이 무서운지 모르고 날뛰는 하룻강아지가 아닌, 그 잔인성을 알아서 떨고 있는 하룻강아지 말이다.
아내가 일하고 난 집에서 육아하니, 현장에서 상사 눈치 보고 땀 흘리며 일하는 누군가의 눈에는 좋아 보일 수도 있겠다. 모르는 소리 마시라.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주중에 집주변을 배회할 수 있는 용감무쌍한 남자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일하지 않고 집에서 쉬는 게 좋다고 생각하려면, ‘주중에 일하러 가지 않고 왜 여기에 있지?’라고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담대함이 필요하다.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편의점이나 은행 갈 때는 일하다 중간에 나온 것으로 보일 수 있으니 괜찮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약 타러 가는 것도 하루 쉬는 날로 보일 수 있으니 그나마 괜찮다. 하지만 아들의 학교 일로 담임선생님과 연락을 주고받는 일은 때로 날 위축되게 했다.
아들이 3학년 되면서 스스로 학교를 오가니, 정문 앞에서 자식을 기다리며 다른 학부모 눈치 볼 필요는 없어졌지만, 이런저런 일로 집 밖을 나서면서 만나는 이웃 주민들의 시선을 감당해내기란 시간이 필요했다. 남자로 살면서 일하지 않고 집에서 쉰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목사라는 정체성을 되새길지언정, 주중에 일하지 않는 날 보며 뭐 하는 사람일지 궁금해하는 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에서 초연하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찰리 채플린의 말이 생각난다.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의 눈에 보이는 내 모습은 희극일지 모르나,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2020년 5월, 교회 사임 후 난 행복에 겨웠다. 2006년 교육전도사를 시작으로 14년 동안, 단 하루도 주일 공예배를 빠진 적이 없었다. 사임하자마자 그다음 주일 오전에 집에서 일찍 예배드린 뒤 가족과 집 근처 한강공원을 찾았다. 남들 예배드리는 시간에 따스한 햇볕을 쬐며 바라보는 한강의 모습은 백두산 정상에서 본 천지를 연상케 했다. 주일에 교회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으니 마치 세상 모든 사람이 주일엔 예배당에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웬걸, 주일 오전 한강공원은 연인과 가족으로 넘쳤고, 그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그동안 목사라는, 사역이라는 이름 때문에 누리지 못했던 행복과 자유를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행복도 잠시, 당장 가족이 함께 살 집을 찾아야 했다. 전임으로 사역하는 목사에게 대부분 교회는 사택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제 사택을 나왔으니 스스로 살 집을 구해야 했다. 문제는 돈이다. 누가 목사를 부자로 알았던가. 교회 세습이니 비자금이니 성추행이니 등 온갖 비리로 얼룩진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의 모습만 매스컴에 보도되니, 교회 다니지 않는 이들이 목사를 돈과 성이나 밝히는 속물로 인식하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일부 목회자에 화날 뿐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돈 없지만 겸손하고 거룩한 목사가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그래, 돈이 문제다. 돈이 없으니 집도 돈 없는 자가 살아야만 하는 곳을 찾아야 했다. 돈이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 나도 안다. 다만, 목사도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범 앞에는 두려워 떨고 있는 한낱 하룻강아지일 뿐이란 사실을 깨닫게는 해주더라.
일하지 않고 쉰다는 거? 그 심적 고통과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매일 일하다 연차든 휴가든 쉰다는 건 꽤 짜릿하다. 하지만 일하지 않고 쉬기만 한다는 건, 끊임없이 내 존엄성을 지키려고 싸워야 하는 힘든 과정이다.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무능한 자라는 자기비판과 고통스러운 전쟁을 치러야 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나의 무능력함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게 하고,
나 자신을 긍휼히 여기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