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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도 무보수 직장

주부 무시하지 마라

by 냉수 한 그릇

아들이 어린이집을 다닐 때만 해도 등·하원은 내 담당이었다. 교회 출·퇴근 시간이 맞았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어찌 된 게 초등학교가 어린이집보다 일찍 마치는 바람에 하교 후 아들을 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고학년쯤 되면 스스로 하겠지만,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에겐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결국, 교회를 사임하고 내가 담당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해야 하니 말이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재정관리, 설거지, 빨래, 쓰레기 배출 등 부분적으로 하던 집안일을 전적으로 맡아서 하게 되었다. 아내 퇴근 전 식사 준비는 기본이고, 아들 양육까지 도맡아 했다. 학원을 보내지 않는 대신 내가 국어, 영어, 수학 등을 직접 가르쳤다. 교회에서 목사가 늘 하는 게 설교며 양육이니, 아들 공부 가르치기도 몹시 어렵진 않았다. 오히려 아들의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고 과외로 가르치니 아들은 학업역량을 발휘했다.


살림하며 이것도 엄연히 직장이란 생각을 했다. 일반 직장과 차이가 있다면 무보수로 일한다는 것이다. 맞벌이가 가능하다면 하는 것도 좋겠지만, 어린 자녀를 누군가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육아와 살림도 일로 인정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하고 아내가 살림했을 때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막상 주부(?)로 일하다 보니 더욱 그래야 한다고 확신했다.




앞에서 내린 백수의 정의에 따르면, 난 백수다. 이상하다. 분명 살림하는데 왜 사람들은 주중에 일하지 않는 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지 모르겠다. 궁금하지만 차마 묻지 못하다가 질문할 때만을 호시탐탐 노리는 그들을 뒤로하며, 아직 대한민국은 남자는 ‘밖’, 여자는 ‘안’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남아있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언제 남자도 살림하는 주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때가 올까? 왜 여자가 집안일을 하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남자가 하면 이상한 눈초리로 대할까? 누군가는 밖에서 돈을 벌어야 하고, 또 누군가는 집안일을 해야 한다면, 남녀역할 구분 없이 하면 되지 않을까? 좀 더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니 대한민국 남성들이여, 돈 번다고 집안일하는 아내를 무시하지 마라. 때로 속상한 마음에 목소리 높이는 아내에게, 내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쓰고 다니면서 어디서 큰소리냐고 따지지 마라. 만약 아내가 살림하지 않으면 당신이 해야 한다. 그러니 살림도 직장으로 인정할 것이다. 그들의 헌신도 경제적 원조와 맞먹는 공로로 인정해야 한단 말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아내와 아들에게 먼저, 살림도 직장이라고 설득해야겠다. 난 백수가 아니니 더는 놀리지 말라고 해야겠다. 비록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하고, 100만 원 이하를 벌지만, 육아와 살림에 아들 과외까지 하니 당신이 버는 것보다 훨씬 많이 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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