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 맛집 카페리뷰어
슬픔에 대해 공부를 한단 생각은 못 했습니다. 슬픔을 공부한다? 문학에선 슬픔도 공부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네요. 오늘 가져간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선 영화 "킬링 디어"를 통해 타인의 슬픔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노래합니다. 슬픔에도 내 것과 남 것이 있었단 사실 인지는 왠지 서글프네요.
아무리 노력해도 우린 타인을 슬픔을 온전히 느낄 수 없습니다. 내가 아픈 건 화들짝, 슬픈 건 죽을 만큼 고통스럽지만 타인의 슬픔은 아무리 노력해도 온전히 느낄 수 없어요. 아니라고 부정하는 건 거짓말인 거죠. 가슴팍을 짚었을 때 뛰고 있는 심장은 제 주인이 아닌 타인의 몸속에서 뛸 수 없고, 타인의 슬픔 때문에도 멈추지 않는다는 표현에선 탄식이 새어 나옵니다.
오전 11시부터 새벽 0시까지
라스트 오더 23시
음식 주문은 11시 반부터
그래도 희망은 인간을 비춥니다. 인간이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는 인간에겐 희망이 있습니다.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에서
눈이 부셔 눈물이 납니다. 그 핑계로 눈물 글썽일 수 있어서 오늘이 좋네요.
삶이 참 맘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부족하고, 부족하고, 부족하고
뭐가 좀처럼 채워지지 않고, 자꾸 빠져나가기만 합니다.
카페 벽면에, 엘리베이터 문 앞에 쓰인 글귀를 보고
꾹꾹 억눌러 왔던 서러움이 터집니다.
슬픔을 위로해 주는 또 다른 인연이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변화는 없어도
변함이 없기를
그 변화 속에서도 온전히 숨 쉴 수 있기를
나를 잃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두 주먹 꼭 쥐고 다짐합니다.
오늘도 가슴은 언젠가 한 번 칼에 깊숙이 베였던
작지만 못 견디게 아팠던 기억을 소환해냅니다.
비슷하니까
하나일 땐 견딜만했는데
그게 한꺼번에 수십 개 아니 수백 개씩 생기면
알고 있던 슬픔도
공부했던 그 슬픔도
생면부지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어요.
너무 아파서 고구마 한 열 개 먹은 것처럼 가슴 답답하면
속 터질 듯 시원하게 뻥 뚫린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갑니다.
그게 이 일의 시작..,
뻥 뚫린 경치 한 번 보고,
글로 쏟아 낸 밴드 하나 잘라내 제 상처에 붙입니다.
조금씩 조금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