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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자본가 Aug 09. 2017

좋음의 역설

좋은 선택은 왜 가장 나쁜 선택이 되는가




오늘도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태어날 것인가만을 빼고는 나의 삶은 모두 선택의 순간 들이었다. 밥을 먹을 것인가, 공부를 할 것인가, 학교를 갈 것인가, 회사를 갈 것인가, 그리고 오늘을 살아갈 것인가.



몇 십년이 흐르는 동안 수만가지의 선택들을 해왔지만 여전히 나는 선택을 잘 하지 못한다. 매일 반복되는 같은 선택도 언제나 늘 고민하게 된다. 오늘은 김치찌개를 먹을까, 된장찌개를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짜장을 먹을까.











이제는 몇십년동안 늘 수많은 선택을 해오면서 선택의 전문가, 선택의 달인이 됐을 법도 한데 여전히 짜장과 짬뽕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아직도 내가 선택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렇다. 선택은 여전히 내게 어렵다. 몇십년동안 고민한 짜장과 짬뽕도 늘 고민할 정도로 나는 여전히 선택이 어렵다.



하지만 그런 나도 수만가지 선택을 해오면서 한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좋은 선택은 바로 가장 나쁜 선택이라는 것이다. 좋은 선택이 가장 나쁜 선택이라고? 뭔가 잘 못 쓴거 아니야? 어떻게 좋은 선택이 나쁜 선택이 된다는 거지? 애석하게도 몇십년을 선택만 한 내가 내린 결론은 좋은 선택은 가장 나쁜 선택이었다.




우리가 선택을 망설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기회비용때문이다. 오늘 점심에 김치찌개를 먹으면 이제 된장찌개를 먹지 못하게 된다. 오늘 점심에 짜장을 먹어버리면, 짬뽕을 먹지 못하게 된다. 여기서 된장찌개와 짬뽕은 기회비용이 된다. 어떤 것을 선택하면서 포기하게된 가장 큰 이익. 그것을 우리는 기회 비용이라고 부른다. 오늘 점심을 김치찌개로 선택하는 순간, 된장찌개는 내가 포기하게 된 가장 맛있는 메뉴가 되어버린다. 오늘 점심을 짜장으로 선택하는 순간, 짬뽕은 내가 그로인해 포기하게 된 가장 맛있는 점심 메뉴가 되어버린다. 나는 된장찌개를 포기하고 김치찌개를 선택하였고, 짬뽕을 포기하고 짜장을 선택하였다.





우리는 이처럼 뭔가를 선택을 할 때,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떤 것을 포기할때, 많은 것을 고려하여 좋은 선택을 하려고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점심시간이 온다. 나는 짜장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 고민을 한다. 어제 했던 고민이지만 오늘도 한다. 오늘 점심 메뉴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는 사실 굉장히 간단할 수 있다. 가장 맛있는 메뉴, 가장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점심메뉴의 선택을 단순히 맛으로 결정하지 못한다. 맛 외에도 다른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선택을 하게 된다. 가격, 양, 가게와의 거리 등을 모두 고려하여 선택을 하게 된다. 










오늘 나는 점심메뉴로 짜장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짜장을 먹은지도 오래되었고, 뭔가 달짜지근한 무언가가 굉장히 끌린다. 화끈하고 매운 짬뽕국물은 오늘 별로 먹고 싶지 않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중국집에 들어섰다. 그.런.데. 중국집 문 앞에 이런 글이 붙어있었다.





오늘 짬뽕 반값




짜장과 거의 가격이 비슷하거나 500원 정도 비싸던 짬뽕이 오늘 반값 할인 행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 글귀를 보기 전만해도 짜장을 먹겠다던, 짜장을 오늘 최고의 점심메뉴로 생각했던 나는 다시한번 고민에 빠진다.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야. 짜장보다 늘 비싸던 짬뽕이 어떻게 오늘은 반값인거지? 오늘은 매운 것을 별로 먹고 싶진 않지만 오늘만 반값이잖아? 등등.



그리고 우리는 선택한다. 원래 가장 먹고 싶어했던 짜장 대신에 짬뽕을 선택한다. 반값 할인 행사를 하던 짬뽕을 점심메뉴로 선택한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비용의 측면에서 반값행사를 하는 짬뽕의 선택은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오늘 못챙긴 끼니는 평생 못챙겨 먹는다는 말처럼, 나는 오늘 가장 먹고 싶었던 짜장 대신에 짬뽕이라는 메뉴를 선택하고 말았다. 그렇게 나의 점심은 최고의 메뉴를 놔두고 좋은 메뉴를 선택했다. 반값이라는 합리적 선택을 하면서 말이다.




짜장 대신에 짬뽕을 선택한 것은 가장 맛있는 메뉴를 놔두고 그냥 맛있는 메뉴를 선택한 것이다. 가격할인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하면서, 가장 먹고 싶던 메뉴를 선택하지 못하고 적당히 먹고 싶던 메뉴를 선택했다. 물론 반값 가격의 짬뽕을 선택한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좋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다. 나는 오늘 짬뽕을 선택하면서 짜장을 포기했다. 그렇게 좋은 점심을 선택하면서 나는 최고의 점심을 포기하였다.






이런 선택이 비단 짜장과 짬뽕의 문제일까? 우리는 점심메뉴 말고도 수많은 선택을 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리고 우리는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서 최고의 선택이 아닌 좋은 선택을 한다. 거기에는 귀찮아서와 같은 사소한 이유에서부터,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와 같은 현실적 제약이 있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최고의 선택 대신 차선의 선택. 다시말해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을 스스로 합리화한다. '그땐 그것이 최선이었어' 라면서 적당히 좋은 선택에 안주하고 만다.










세계적인 경영학 구루인 짐 콜린스의 『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위대한 것의 가장 큰 적은 좋은 것이다.


 



어떤 기업이든 개인이든 위대한 존재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좋은 기업,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머물기 떄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위대함에 이르는 가장 큰 장애물은 나쁜 어떤 것들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것라는 것이 짐 콜린스의 주장이다. 나는 짐 콜린스의 주장에 동의한다.









우리는 매일 바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여러가지 제약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런 선택의 순간이 너무나도 많다보니 어느 순간 우리는 적당히 좋은 것을 선택하고 만다. 적당히 좋은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짜장과 짬뽕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짜장과 짬뽕을 고민하던 우리에게 누군가가 이 고민에 대한 솔로몬의 해법을 내놓았다. 바로 '짬짜면'의 탄생이 그것이다. 짜장과 짬뽕을 놓고 무엇을 먹을까 매일 고민하던 우리에게 이제 동시에 2가지를 다 먹을 수 있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겨난 것이다.





짬짜면 어떻게 최악의 선택이 되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적당히 만족하며 짬짜면을 고른다. 짜장과 짬뽕 중 내가 더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싫으니까. 고민해도 잘 모르겠으니까. 적당히 2가지를 모두 맛볼 수 있는 짬짜면을 선택한다.




하지만 짬짜면은 과연 최고의 점심메뉴일까? 짜장과 짬뽕 중에 조금이라도 우리가 더 먹고 싶었던 메뉴가 있었을 것이다. 그 차이가 매우 작을지라도 말이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짬짜면을 선택하는 순간 가장 맛있는, 혹은 가장 먹고 싶은 메뉴의 절반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오늘 가장 먹고 싶었던 메뉴가 짜장이었든 짬뽕이었든 말이다. 그렇게 절반의 최고에 적당히 만족한채 오늘도 점심을 적당히 때운다.





이것은 단순히 오늘 점심메뉴를 짜장으로 먹을 것이냐 짬뽕으로 먹을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점심메뉴가 짜장과 짬뽕이라는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어차피 다음 날만 되어도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의 성향이 단순히 점심메뉴가 아니라 우리 삶의 중요한 선택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적당히 만족할만한 선택을 골라내는 사고방식이 단순히 짜장과 짬뽕사이에서가 아니라 인생 전반에 모든 선택에 무의식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커진다. 선택으로 변화하고 결정되는 나의 삶이 최고의 선택이 아니라 적당히 좋은 선택에 머무르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적당히 만족할만한 선택들은 나의 삶을 최고의 삶이 아닌 적당히 좋은 삶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오늘도 나는 적당히 좋은 것을 선택한다. 최고라고 생각되는 선택지를 어떤 합리적 이유를 대가면서 배제하고, 적당히 만족하고 적당히 좋은 선택을 한다. 수만가지 이유를 들어가면서 나는 오늘도 나의 선택을 합리화하고 있다. '오늘은 짬뽕이 반값 행사하네!' 라면서 말이다.





문득 나는 두려워졌다. 그렇게 선택해왔던 나의 좋은 선택들이 결국은 나의 삶을 최고로 만드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나의 선택들은 좋은 선택들이 아니라 가장 나쁜 선택들이었다. 내가 최고의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가장 나쁜 선택. 











그래서 이젠 선택을 하기에 앞서 항상 나에게 물어보려한다. '이것이 정말 최고의 선택인가?' 모든 현실적인 제약들을 배제하고 가장 최고의 선택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최고의 선택을 하는데에는 정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제약이 존재하는지 되묻고자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오늘도 적당히 좋은 선택을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적당히 삶을 살아갈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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