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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온 Jul 01. 2020

서평. 페스트, 알베르 카뮈

전염병이 어린 아이를 데려가고, 친구를 잡아가고, 아내를 낚아채더라도 내 환자 한 명을 돌보는 의사 리유가 있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체념하지도, 도망가지도 않고, 자기 앞에 주어진 일을 하는 하는 인간이 있다. 일반적으로 소설 속 주인공은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변화하는데, 카뮈의 주인공들은 이번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였다. 리유가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살아 숨쉬는 이유다.


전염병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다. 코로나19같은 전염병은 내가 처음 겪는 것일뿐,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전염병의 시발점은 변이되겠지만 결국 인간에게 전이된다. 그러면 이런 평범하고 일상적인 어려움에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신부 파늘루처럼 이건 신의 징벌이야, 하면서 체념할 수도 있다. 기자 랑베르처럼 이건 내 알 바 아니지, 하면서 도망치려고 할 수도 있다. 드물긴 하지만 밀수업자 코타르처럼 이때다, 하면서 이익을 취하려고 할 수도 있다. 반면, 환자를 돌보는 의사 리유가 있고, 정부의 역할을 하려는 공무원 그랑이 있고, 다른 동네에서 왔지만 보건 자원봉사대를 조직하는 타루가 있다. 마을이 봉쇄되고, 떠밀려오는 시체 때문에 장례 절차는 커녕 간소화된 화장이나 매립이 이뤄지는 오랑의 시민들은 기쁨도 없고 슬픔에도 무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할 일을 하며, 사람들과 연대하며 살아야 한다. 히스테릭하게 절망하지도 않고, 근거 없이 낙관하지도 않고, 내가 사람을 살린다는 영웅심 없고, 사람을 살리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없고,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리유의 태도가 이 ‘페스트’의 힘이다. ‘이방인'의 뫼르소만큼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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