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제5도살장, 커트 보니것

by 카멜레온

WWII 드레스덴 폭격


주인공 필그램은 신성한 장소를 방문하는 순례자라는 이름의 의미와는 반대로 지극히 현실적인 국가들의 권력투쟁으로 인해 촉발된 제2차세계대전 막바지에 미-영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에 휘말린다. 전쟁을 신속하게 끝내기 위한 전쟁 혹은 군사적으로 아무 관련 없는 ‘엘베 강의 피렌체'라고 불리는 문화 도시에 대한 감정적 보복이 일어났다. 드레스덴은 잿더미가 됐고 희생자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필그램은 참전한 이후 이 경험담을 책으로 쓰기 위해 전우 오헤어를 연락하고, 참전한 군인들은 영웅이 아닌 “아이”로 “소년 십자군”으로 묘사돼야 한다는 오헤어 아내의 말에 필그램은 그렇게 제목을 붙인다. 전쟁포로수용소로 개조한 제5도살장에 끌려가있는 미군 전쟁 포로로서 자신의 국가가 자신이 잡혀있는 드레스덴을 공습하는 것을 경험한다면 정신이 어떻게 될까. 이 이야기는 실제 작가 경험담에 근거한다.


뭐 그런거지


필그램은 드레스덴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사망하는 것을 목격했다. 한 명의 사망을 목격해도 정신적 충격이 클텐데 필그램은 최소 100번 이상을 겪었고 그럴 때마다 “뭐 그런거지”라고 되뇌인다. (책에서는 “뭐 그런거지”가 106번 나온다고 한다.) 외면에 평화가 없을 때 내면의 평화가 깃들기 힘들다. 필그램은 정신분열증을 겪는다. 그는 비행접시에 납치되어 트랄파마도어 행성 동물원에 알몸으로 전시됐고, 여자 지구인과 짝짓기를 하라고 했다고 주장한다. 정치인들의 결정으로 민간인이 수만 명 학살될 때 그 경험을 어떻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트랄팔마도어 외계인은 변기 뚫는 도구처럼 생겼는데 흡인컵은 땅 쪽으로, 자루는 하늘을 가리키며 자루 끝에 손이 달렸고 손바닥에 초록색 눈이 달린 모습이다. 이들은 시간까지 더해 4차원으로 세상을 보며 이에 따라 죽음을 끝으로 보지 않는다. 얼음, 물, 수증기로 형태가 변하듯 사람도 죽으면 몸의 형태에서 벗어났을 뿐이라 슬퍼하기는 커녕 그냥 어깨를 으쓱하며 “뭐 그런거지”라고 한다. 그렇게 이해해야만 필그램이 (그나마) 제정신으로 살 수 있었나보다.


지지배배뱃


역사적 사실인지, 공상과학 소설인지 경계를 넘나드는 ‘제5도살장’에서 새소리 지지배배뱃이 자주 들린다. 수십만 명을 학살한 것은 비난받지 않는 반면 한 군인은 찻주전자를 가져갔다는 이유로 총살을 당한다. 삶은 부조리하다. 자유의지라는 게 과연 있을까. 트랄파마도어 외계인들에 의하면 자유의지는 지구에서만 사용되는 언어이며, 결국 본인들이 지구를 폭격할 것이라고 한다.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하면 우리는 그 무지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이 신이든 외계인이든 그래야 인간의 머리로 납득해서 거짓이라 하더라도 빈 칸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해석의 문제다. 빌리의 직업은 흥미롭게도 검안사이다. 사람들이 세상을 똑바로 보게끔 도와주는 검안사는 세상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렌즈를 제공한다. 새가 인간들이 하는 꼬라지를 봤을 때 무슨 생각을 할까. 선주민이 사는 곳을 ‘발견’하고, ‘자유’ 무역을 하고, 시민의 ‘해방’을 위해 민간인 도시를 침공하는 모습을 보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할 말을 잃지 않을까. 지지배배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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