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께

by 카멜레온

서평. 여행 혹은 여행처럼, 정혜윤


나의 종교는 사람입니다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한 세계를 만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의 과거 경험과, 현재 관점과, 미래 지향점이 내게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사람을 어떻게 대해왔던가. 새로운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설레기보다 몇 마디 대화에 상대방을 섣불리 판단하곤 했었다. 관심조차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 책은 장소보다 사람에 대한 여행기이다. 한글을 배우며 시를 쓰는 할머니, 한국에 와서 차별을 겪으며 노동법을 공부하는 버마 노동자, 그리고 “나의 종교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한 지리정보시스템 교수. 사람을 믿기는 커녕 의심하던 나에게 “가장 상처도 받지만 가장 갈망하는 것도 사람이고 가장 위로를 주는 것도 희망을 주는 것도 사람”이란 그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행하듯 산다면


해외여행을 할 때는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온 몸에 신경을 곤두세워 체험하려고 한다. 입국하자마자 코 끝에 스치는 땅의 냄새를 맡고,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부지런히 걸어다니고, 카메라가 담지 못하는 풍경을 눈 속에 가슴 속에 채우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귀에 담으며 신기해하고,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두 눈 감고 천천히 음미한다. 지금 한국에서 그렇게 살고 있던가? 다시 한국으로 귀국할 날을 아쉬워하며 매 순간 충실하고 즐겁게 여행했던 것처럼 여기 한국에서의 일상을 그렇게 보내고 있는가? 여행도, 일상도 두 번은 없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과 여기 이 순간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여행이다.


할아버지의 인문정신


2021년 9월 6일 월요일 오전에 할아버지께서 별세하셨다. 해외여행을 아쉬워하기보다 할아버지 댁에 한 번 더 들렸어야 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분단, 육중한 산업화 시대 기계와 인간 바둑기사를 이긴 AI, 그리고 코로나까지 99년의 엄청난 세월을 겪으신 할아버지의 세계를 궁금해하고, 할아버지의 역사를 들었어야 했다. 정말 죄송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처럼 남에게 베풀고 도와주면서 살고, 사람을 소중히하며 살겠습니다. 사랑해요 할아버지. 좋은 곳에서 영면하시길 바랄게요. 내일 발인 때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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