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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온 Jun 21. 2022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레떼 5

- 산 세바스찬까지: 천국이다! 바다도 사람도 너무 이쁘다!

- 데바까지: 지옥이다. 외모에 홀리지 말고 내 속도를 알자.

- 무니티바르까지: 시절인연이 있다. 헤어져도 괜찮다.

- 레자마까지: 내 선택을 믿자. 난 이제 누구를 만나도 나를 지킬 수 있다.

- 포르투갈레떼까지: 사람을 소중히 하자. 얘 아니었으면 여기 못 왔다.

피에르, 루이, 나 셋이 도착했을뻔한 빌바오에 세르지오 아저씨, 루이, 나 셋이 도착했다. 세르지오 아저씨가 길을 물어 구겐하임 쪽으로 가는 길을 향했다. 가다가 간단한 음식을 파는 바(bar) 에서 아저씨는 라떼 한 잔, 크로와상 하나를 주문했다. 키도 큰 아저씨가 어떻게 이걸로 식사가 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이룬에서 시작해 5일 차 걷고 있다. 해안길, 산길, 차도를 걸었으며 처음으로 대도시에 도착했다. 현지인들은 출근을 하고 일상을 살고 있었다. 반면 우리 셋은 모자를 쓰고, 등산복을 입고, 흰 조가비를 매단 큰 배낭을 매고 크게 눈을 뜨고 시내를 구경했다. 우리가 순례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부엔 까미노! (Buen camino! 좋은 길 되세요!)” 라고 인사했다. 셋이 걷다가 빨리 걷는 세르지오 아저씨와 거리가 벌어지면서 따로 떨어지게 됐다. 이렇게 까미노에서는 만남과 헤어짐에 집착이 없다. 

이제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다. 길은 신경쓰지도 않고 무작정 루이 발 뒤꿈치만 보고 따라가는데 온 몸이 너무 아프다. 발가락에 잡힌 물집이 계속 터지는지 진물이 흘러나오는 게 걸으면서 느껴진다. 양말이 진물로 적셔져간다. 오늘은 30km 쯤 걸었다. 일상 걸음으로는 더 빨리 걸을 수 있는데 물집 때문에 몇 시간이 더 걸렸다. 알베르게에 도착하기 직전에는 거의 기어가는 수준이었다. 알베르게는 학교를 개조한 곳이었다. 강당에는 2층 침대를 2열로 두어 남녀 혼용 40명 쯤 묵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알베르게 중 가장 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 있었다. 마치 난민 수용소같았다. 내가 진짜 여기서 자야 하는거야? 당황했다. 복합적인 감정으로 또 눈물이 터졌다. 하루 걷는 일정이 끝난 게 기뻤고, 발바닥이 너무 아팠고, 난민 수용소같은 알베르게에 자야 하는 상황이 너무 처참했고, 드디어 뜨거운 샤워를 할 수 있는 게 행복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2층까지 올라가야 했다. 마치 치질이 걸린 사람처럼 난간을 붙잡고 엉거주춤하게 오르내렸다.

방망이로 온 몸을 두드려 맞은 것같다. 온 몸이 너무 아프다. 양말을 벗는데 진물 때문에 양말이 발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루이가 내 발을 옆에서 보더니 난민 수용소, 아니 알베르게 관리자에게 구급용품이 있냐고 물어 가져다 주었다. 물집도 문제였는데 오른쪽 발 첫 째와 둘 째 발가락 사이에 살이 찢어져서 깊고 작은 브이자 계곡이 생겼다. 그 사이에서 진물과 피가 계속 흘렀다. 루이가 바늘을 갖고 오더니 찌르는 시늉을 한다. 물집은 바늘로 터트려야 한다는 뜻인 듯했다.

- 안돼! 그냥 놔두면 알아서 터진데.

루이는 어투로 거절을 감지하고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소독제와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 대신 붕대를 감아줬다. 찢어진 살을 붙이기 위한 것같았다. 나머지 발가락도 퉁퉁 붓고, 발톱이 허옇게 뜨고,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았다. 

- 발 괜찮아요? 

강당의 벤치 넘어 한 노부부가 말을 걸어왔다.

- 어디서 왔어요?

-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얘는 중국인인데 스페인에서 살아요. 어디서 오셨어요?

- 영국 출신인데 남아공에 살아요.

- 남아공이요? 남아공 사람 처음 봐요!

남아공 노부부는 이번 까미노가 두 번째라고 한다. 처음에도 북쪽길을 했는데 정말 좋아서 프랑스길에 있는 알베르게 봉사활동을 했다고 한다. 숙소를 제공하면서 여러 국적의 사람들을 만났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 순례하는 사람들은 보통 어떤 화두를 갖고 와요. 직장에 대해서든, 사람에 대해서든 뭔가 진지한 질문을 갖고 답을 찾으려고 오는 사람이 많아요. 근데 드물긴 하지만 생각 없이 놀러 오는 사람이 있어요. 천 키로를 걷지 않고 일부 구간만 걷고, 짐은 다음 숙소로 보내버리고, 맨 몸으로 잠깐 걸으면서 사진은 열심히 찍고 순례길 힘들게 걷는다고 SNS에 자랑하는 사진을 올려요. 그리고 밤 늦게까지 술 마시고 시끄럽게 해요. 다른 사람들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배낭 들고 또 부지런히 걸어야 하는데. 프랑스길 때 경험이었어요. 근데 북쪽길에서는 아직까지 그런 사람은 못만났어요. 북쪽길 정말 좋지 않아요?

난 다 싫었다. 북쪽길이고 뭐고 집에 가고 싶다. 왜 발가락 사이에 살이 터지도록 왜 30-40km를 걷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이미 평생 걸을 거리를 다 걸은 것같다. 한국 돌아가면 당분간 걷지 않을 것이다. 운전을 하지 않으니 택시를 매일 부르고 싶다. 레자마부터 포르투갈레떼까지는 길이 더럽고, 냄새 나고 다 싫었다. 계속 포기라는 단어가 눈에 아른거렸다. 후회, 참회라는 단어도 보였다. 업(karma)이 작용하고 있는 것같았다. 까미노 여행을 하기 전, 동생 생일을 맞아 싱가포르에 놀러갔었다. 멋내기를 좋아하는 동생은 많이 걸을 것이라고 내가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구두를 신고 다녔다. 나는 운동화를 신고도 발이 아팠는데 동생은 구두를 신고 하루 종일 걸은 결과 물집이 생긴 것은 당연하다. 발이 아프다고 해도 나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제 알아서 구한 반창고도 소용이 없었는지 급기야 구두를 벗고 맨발로 싱가포르를 돌아다녔다. 깨끗한 도시라 정말 괜찮았던건지, 어쩔 수 없어 아파도 참았던건지 걔는 그렇게 맨발로 싱가포르를 걸어다녔다. 동생이 맨발로 걸어다녀도 나는 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같이 걷는 게 창피해서 멀리 떨어져있으려고 더 빨리 걸었다. 빨리 걷지 않는다고, 너무 많이 쉰다고 걔한테 짜증을 냈다. 반면 집시 세바스찬 아저씨는 (의도가 따로 있었지만) 먼저 쉬자고 하고 소독제와 치료제, 반창고를 주었다. 루이도 내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쉬자고 했고, 나중에는 소독제와 연고를 구해주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난 이방인만도 못한 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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