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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온 Aug 01. 2022

[산티아고 순례길] 에스캄플레로 17

- 아침 식사 준비됐다!

모이짜 아주머니가 나를 깨웠다. 어제 저녁 식사도 챙겨주시더니 오늘 아침 식사도 벌써 차려주셨다. 내가 나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는 것같다. 이렇게 계속 함께 다니면 내가 독립심이 길러질까?

어제 무리를 했는지 많이 잔 듯한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남은 순례자들이 정말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오전 7시 전에 출발을 하는데 8시에 일어나니 남은 건 모이짜 아주머니와 냉장고 속에 다른 순례자들이 무거워서 버리고 간 음식이었다. 빵은 몇 조각 밖에 없는데 남은 크림치즈가 한 통이었다. 치즈를 정말 좋아해 크림 치즈를 스푼으로 퍼먹었다. 몇 통을 먹을 수 있을 것같다. 키위와 자두도 있었다. 평소에는 귀찮아서 잘 먹지 않지만 모이짜 아주머니가 있으니 잘 챙겨먹었다.

계속 걸으니 오비에도라는 꽤 큰 도시가 나왔다. 각종 상가, 공공기관, 성당, 공원이 있었다. 둘이 길거리를 걷다가 노란 화살표를 놓쳤다. 사람들한테도 묻고, 지도도 봤는데 같은 광장을 최소 3번은 지나간 것같다. 다시 화살표를 찾고 작은 언덕을 올라가기 전에 휴식을 취했다. 모이짜 아주머니가 초록색 매트를 꺼내고 그 위에서 잠깐 누워있다 가자고 했다.

나는 늦게 출발해서 빨리 걷고 싶은데 모이짜 아주머니는 어쩜 이렇게 태평한지 모르겠다.

- 모이짜 아주머니, 빨리 가지 않으면 알베르게가 다 나가지 않을까요?

- 알베르게는 다 찾게 돼 있어. 한 곳이 차면 다른 곳에 가면 되지. 좀 늦게 도착하면 어때. 힘 좀 빼고 여기 누워서 하늘 좀 봐봐! 어머 이쁘다!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본 건 정말 오랜만인 것같다. 마지막으로 돗자리 펴고 소풍간 적이 기억나지조차 않았다. 

얼마 전에 한 모임에서 한강 소풍 계획이 있었다. 몇 명이 주도해 공지를  올렸는데 나는 가고 싶으면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G가 가는 소풍을 가고 싶었지만 그 외 여러 명이 가는 소풍은 가기 싫었다. 즉, 둘이 가고 싶었다. 

왜 따로 연락을 해서 같이 가자고 했는데도 가지 않았냐고 나중에 G가 나에게 물었다. 

- 여러 명이 가면 본인의 특별함이 줄어들 것같았어요?

정곡을 찌른 질문에 말문이 막혀 웃음으로 넘겼다. N 명이 더 가면 G한테 받을 수 있는 관심이 1/N로 줄잖아. 알면서 그런 말을 한 G가 얄미웠다.

이렇게 계속 누워있자니 마음이 편하기보다 더 불안해졌다. 내가 이렇게 놀아도 되나? 

해가 지고 겨우 찾은 에스캄플레로 알베르게는 충격적이었다. 2층 벙커도 아니고 3층 벙커였다. 1층 벙커에 있는 사람이 마치 2, 3층 벙커가 무너져 깔릴 것같았고, 바닥과 너무 가까워 벌레가 기어올라갈 것같았다. 다행이 다른 순례자가 거의 없어 원하는 2층 벙커에 자리를 잡았는데 청결해 보이지 않았다. 통증이 오후에 발에서 쇄골로 올라가더니, 저녁에 심장에서 어깨로 올라갔다. 프리모티보길은 숲길이라고 들었는데 하루종일 대도시를 봤기 때문에 약간 실망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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