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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온 Aug 10. 2022

[사십팔 필라테스] 32.꼿꼿함 그리고 모델같으세요

꼿꼿함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주인공 해준은 서래를 좋아하는 이유를 "몸이 꼿꼿해서"라고 말한다. 몸이 꼿꼿하다는 것은 세상을 직면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반영한다. 서래는 남편을 포함해 시체를 눈뜨고 볼 수 있다. 서래의 몸은 꼿꼿하다. 반면 내 몸은 구부정하다. 요즘은 170이 큰 키도 아니지만 내가 어릴 때는 키가 크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친구들은 나보다 키가 작아서 내가 너무 큰가, 정상적이지 않은가, 평범하지 않은가,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엉거주춤하게 서고 걸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큰 장점을 잘 살리지 못했을까 아쉽다. 게다가 인생을 살면서 겪은 여러 일들로 위축되어 내 키는 더욱 쭈글어들었다. 어쩌면 나는 탕웨이처럼 172였을 수도 있겠다. 예전에 건강검진에서 171이 나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신감 없이, 자기비하를 하면서 몸을 움츠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모델같으세요


필라테스에는 척추를 곧게 세우는 자세가 유난히 많다. 요가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더 자주 듣는다. 필라테스 강사는 어떤 동작이든 올바른 자세, 즉 몸을 정렬하기 위해 척추를 바르게 하라고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 정수리를 뽑아내듯이

- 어깨를 펴고

- 가슴을 내밀고

- 척추에 심을 꽂은 듯이

- 코어에 힘을 주고

- (내 골반은 앞으로 말렸으므로) 오리궁뎅이처럼

- (리포머에 누워있는 경우) 허리 뒤에 개미 한 마리 지나갈 수 있듯이 /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수 있듯이

지난 이틀 동안 내가 내 키를 말하면 "그렇게 컸어요?" “170이나 됐어요?” 라는 말을 각각 두 명으로부터 들었다. 본래 키보다 크게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오히려 나는 내 키를 깎아먹고 있었다. 상의를 길게, 하의는 헐렁하게 입는 등 패션도 한 몫했을 것같다. 강사에게 문의하니 장기적으로는 운동하면서 척추를 지탱하는 기립근을 키워야겠지만, 당장은 올바른 자세를 의식할 것을 권유했다. 의식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한 마디의 칭찬도 중요했다. 어제 의식적으로 올바른 자세로 걸어야지, 생각하며 걷는데 어떤 회사 직원이 "모델같으세요"라고 했다. 순간 여성의 몸매가 남성의 시각에 의해 대상화됐다는 불쾌함과 동시에 만족감이 묘하게 들었다. 모델같은 “몸매”가 아닌 모델같은 꼿꼿한 “자세”라면 불쾌한 칭찬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같았다. 모델들은 의식적으로 올바르게 걸어야지, 도 있겠지만 나는 모델이니까 모델답게, 라는 무의식적인 정체성이 있어서 자세가 올바른 것이 아닐까. 나아가 모델이라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의식적인 자세보다 무의식적으로 당당하게 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도덕성과 무관하게 역사적으로 어느 독재자나 영웅도 등이 굽어 보이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프랑스 루이 14세는 어깨를 한껏 뒤로 젖힌 초상화가 있고, 대한민국 이순신 장군은 광화문 한복판에 위풍당당한 동상으로 세워져있다. 나는 나를 어떻게 보는가. 그게 자세로 반영된다. 나는 스스로에게 당당한가. 나는 나 자신에게 떳떳한가. 나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가. 주어진 키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던 것처럼 혹시 주어진 능력이나 장점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있었을까.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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