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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공간이 만든 공간, 유현준

by 카멜레온

건축물을 볼 때 정치학자와 미술사학자의 관점은 다를 것이다. 거대한 베르사유궁을 보면서 정치학자에게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절대왕권이 보이고 프랑스 시민이 부담해야 했던 높은 세금과 그 결과 프랑스 혁명,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참수가 떠오를 것이다. 반면, 미술사학자는 궁전의 화려한 바로크양식, 거울의 방, 천장화, 정원, 조각, 분수 등의 아름다움을 볼 것이다. 이 책은 건축가의 시선에서 본 건축물을 동양과 서양으로 구분해 설명했다.


동양과 서양의 건축양식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작가는 그 원인을 강수량의 차이에서 찾았다. 서양 경우 강수량이 적고, 이에 따라 밀농사가 발달했고, 개인이 할 수 있는 농사라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벽을 세워 개인 공간이 확보되었다. 반면 동양 경우 강수량이 많고, 이에 따라 벼농사가 발달했고, 벼농사는 다수의 노동력이 필요해서 집단주의가 발달하고, 비가 오면 땅이 물러져 벽은 넘어질 수 있으므로 대신 기둥을 세우고 자연 풍경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육로로 동서양의 교류가 시작되었을 때는 낙타와 말을 이용해 향신료나 비단 처럼 가벼운 상품이 오갔고, 이후 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선박을 통해 도자기 등 무겁고 큰 상품이 대량으로 운송되었다.


이 책은 사진, 도면 등 시각 자료가 있어 보는 재미가 있다. 작가는 동서양이 교류하면서 서양이 동양의 건축양식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대표적인 건축가 몇 명을 소개하는데, 특히 다섯 명이 눈에 띄었다.


프랭크 라이트 로이드는 집 아래 폭포를 만들었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동양의 양식을 서양 건축물이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스 반 데어 로에 경우 집이 길게 펼쳐진 한옥 형식이었고, 벽을 전면 유리로 만들어 마치 정자처럼 밖에 있는 자연을 완전히 내다볼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물이 이제 더 이상 네모가 아니라 곡선이 있고, 비대칭적이다

루이스 칸은 햇빛을 건축물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거나, 건축물이 하늘과 바다를 품을 수 있도록 중간을 공터로 하고 건축물을 양쪽에 배치시켰다


이와 같이 동양이 추구했던 자연과의 조화를 서양 건축물에서 점차 보여주고 있는 점을 작가는 지적했다. 동양 건축양식에 대한 작가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위의 네 작가보다 안도 다다오라는 건축가의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다다오는 건물과 자연뿐만 아니라 이 둘을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을 더했다. 그의 작품인 ‘물의 교회’, ‘바람의 교회’는 서양의 높은 고딕양식의 교회와 확연히 차이가 났다.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듯 낮은 건물이었고 물이 보이고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구조였다. 신도들의 동선을 고려해 충분히 건물과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길을 길게 만드는 동시에 꺾이는 부분들이 있어 신도들은 걸을 때마다 다른 각도에서 다른 풍경을 보게 연출했다. 제주도 글라스 하우스 등 한국에도 몇몇 건축물을 남겼다고 한다


책에서는 주로 동양 영향을 받아 자연을 더한 서양의 건축양식을 소개한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동양은 서양 건축양식이 너무 오래 전부터 도입되어 따로 소개가 필요없었던걸까? 아니면 딱히 소개할만한 창의적인 건축물이 없는걸까? 서울에는 미적 감각은 거의 없고 효율성만 강조해 닭장인지 감옥인지 모르겠는 사무실 건물들이 빼곡하다. 학교도 마찬가지이다. 주로 소개된 서양 건축물을 보면서 독창성이란 결국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융합하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했다. 개성있는 건축물은 개성있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나와 다른 사람과 나와 다른 의견을 ‘이상하네' 라고 생각하는데 그치지 않고, ‘독특하네' 하고 비하하지 않고 다름을 동등하게 인정하는 날이 올까? 당연한 이론이라고 생각하지만 개방성,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동양이 서양에서 분명히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건축물을 볼 때 효율성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을, 건축가의 지향점을 눈여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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