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소셜 애니멀, 데이비드 브룩스

by 카멜레온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일까? 만약 그랬다면 (곧) 미국 전 대통령이나 한국 전 대통령은 애초에 당선되지 않았어야 한다. 책에 따르면 유권자는 후보자의 사진이나 음소거한 동영상을 10초만 봐도 당선자를 맞출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럼 선거 캠페인 당시 이민자와 유색인종, 여성을 비하하는 사람, 스스로의 능력보다 부친의 후광효과를 받은 사람이 당선된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사회적 동물 social animal이기 때문이다. 이성은 감정과 개별적이거나 상반된 것이 아니라 감정과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고 한다. 마치 빙하처럼 의식은 수면 위에 빼꼼 보이는 2%이고 대부분은 수면 아래 거대한 98%가 무의식인 것이다. 무의식의 정보 처리 능력은 의식의 200,000배라고 한다. 왜 (하필) 그런 친구를 골랐는지, 왜 기업이 그런 직원을 승진시켰는지, 왜 국민이 그런 대통령을 골랐는지는 무의식과 감정이 의식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저는 모델이잖아요"라는 한 모델의 말을 듣고 그래서 모델이 몸매 유지가 가능한거구나 생각했다. 나 스스로를 누구라고 규정하느냐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 나는 모델이다, 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소식할 수 있다. 일반인은 더 먹고 싶다, 참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라고 생각하지만 모델은 나는 모델이니까 이 정도 몸매는 돼야지, 이 정도만 먹어도 됐어, 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내 부모는 이런 사람이니까, 나는 이런 학교를 나왔으니까, 이 정도 연봉을 받아야 하고, 이 정도 생활 수준은 갖춰야 한다는 기준은 어릴 때부터 무의식에서 쌓인 것이다. 이런 기대치는 의식적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부모님, 선생님, 친구, 직장 선후배 동료 등 많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무의식에 저장된다. 책에 따르면 IQ로 측정되는 지능은 학교 성적에까지만 영향이 있고 이후 인생 전체 성공에 미치는 정도는 20%에 불과하며 나머지 80%는 어떤 문화가 있는 사회에서 사는지, 어떤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과 어울리는지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내가 다른 나라에서 살았다면, 다른 부모나 사람들과 지냈다면, 내 인생은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 5명의 평균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같다. 여러분의 그 5명이 어떤 사람들인가요?


오랜 시간동안 감정보다 이성에 따라 선택하려고 노력했다. 직관이나 감정을 따라서 잘 된 결정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감정이 억압된 사람은 좋은 결정은 커녕 아예 결정을 못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감정이 도덕성, 가치관, 우선순위를 판단하는데 크게 개입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한 감정, 어떤 사건을 봤을 때 저건 잘못됐다는 감정, 어떤 행동을 할 때 망설여지는 감정 모두 인간이 더 나은 선택을 할 때 도움이 된다. 이런 감정은 갓난아기들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감정을 알아채거나 표현하는 것에 서툴기 때문에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끼고 신뢰를 갖는다. 작가에 따르면 좋은 직장인이든 좋은 부모든 기본 수준 이상이라면 성공 여부에 공감력이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상대방에게 “이래라 저래라" 조언하는 것보다 “그 일로 많이 힘들겠다”라고 공감하는게 역설적으로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데 더 효과적이다. 당사자는 답을 모르는 게 아니다. 답은 이미 머리로 아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식은 움직였는데 무의식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생김새든 성격이든 그래서 우리는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고 그런 사람을 선택한다고 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만났던 것이다. 좋은 친구를 사귀려면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야겠다 생각했다.


책에서는 부유하고 안정적인 집안에서 자란 해롤드 Harold와 이민계 집안에서 큰 야망을 가진 에리카 Erika가 서로 다른 선택을 왜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학교 숙제를 (안)할 때에도, 음식을 선택 잘(못)할 때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건은 특별히 없었다. 그냥 그런 환경에서 자랐으니까 그 사람에게는 그런 선택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어떤 가치관에 오랫동안 반복해서 노출되면 세뇌되어 자신도 모르게 그 가치관은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자신이 놓인 환경에서 개인 의지로만 어떤 일을 하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에리카는 환경을 바꿨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가족을 떠나 스스로 더 넓은 세상을 펼쳐주는 학교로 옮긴 것이다. 새 학교에서 에리카는 모든 것을 재학습했다. 어떻게 인사하는지부터 어떻게 걷는지, 대화하는지, 밥먹는지, 공부하는지 등 해롤드가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을 에리카는 의도적으로 배워야 했다. 여기서 희망을 발견했다. 나 스스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힘들면 긍정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하는 것, 실패가 두려워 행동하지 않는다면 서슴없이 도전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하는 것이다. 성인이 (오래 전에) 됐으므로 부모를 탓할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환경과 가치관을 선택하는 것이다. 애써 이성과 합리성을 따르려고 하지 말고, 나는 이성과 합리성을 지배하는 감정과 무의식을 가진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나를 어떤 상황에 둘 것인지 어떤 사람과 어울릴 것인지 선택을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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