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때 이상주의자가 아니라면 가슴이 없는 것이고, 노년 때 현실주의자가 아니면 머리가 없는 것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살아온 궤적에 따라 가치관이 형성되므로 청년일 때는 진보주의자, 노년일 때는 보수주의자가 되는 건 비판할 일이 아니라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 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파와 진보파가 서로의 주장이 아니라 그러한 주장이 형성된 과정을 이해하려는 노력, 서로의 바퀴가 아니라 거쳐온 바퀴자국을 살펴보는 노력을 한다면 세대 갈등의 골이 덜 깊어지지 않을까.
19세기 중반 러시아에서의 세대갈등
바자로프는 뭐 하는 사람이냐?
그는 니힐리스트예요!
아르카디는 자신이 존경하는 친구이자 스승 바자로프를 큰아버지 파벨과 아버지 니콜라이에게 이렇게 소개한다. 바자로프는 당분간 아르카디와 파벨, 니콜라이 댁에 머무는데 첫 날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자네 큰아버지는 좀 별나더군 […] 이런 시골에서 무슨 멋을 그렇게 부리나! 게다가 그 손톱은! 전람회에 내놓으면 좋겠어!
바자로프의 전혀 거리낌 없는 태도가 그의 귀족적 성미를 건드렸다 […] 바자로프를 극도로 미워했다. 오만한 놈, 뻔뻔한 놈, 냉소적인 놈, 천한 놈이라고 간주했다.
예술을 중시하는 파벨에 대해 바자로프는 예술이 “돈을 가져다주냐 치질을 고쳐주냐”며 예술은 무시하고 객관적이고 실용적인 과학과 의학을 중시한다. 결국 시골 귀족 파벨은 어떠한 권위도 인정하거나 존경하지 않는 니힐리스트 바자로프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파벨은 결투의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았지만 바자로프는 자신을 미워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기 때문에 결투에 동의한다. 표시선으로부터 각각 열 발자국 멀리 떨어져 권총을 두 번 발사하기로 한다. 바자로프는 파벨의 허벅지에 총상을 입힌다.
사랑에도 뛰어들지 못하는 바자로프
바자로프는 권위나 예술 뿐만이 아니라 사랑과 결혼도 깔본다.
그건 다 낭만주의고 실업는 소리고 쓰레기고 예술이야. 차라리 딱정벌레나 보러 가세 […] 아직도 결혼에 의미를 부여한단 말인가? […] 기사도 정신을 꼴사나운 짓이나 질병으로 간주했다 […] 남자는 그런 시시한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그러다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미모와 지성을 갖춘 연상의 여인 오딘초바를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바자로프는 역설적이게 자신이 경멸하는 “귀족” 출신을, 자신이 조롱했던 “사랑”에 눈뜬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바자로프는] 자기 안에 낭만주의자가 있음을 깨닫고 분노하곤 했다
사랑에 상처받는 게 두려웠을까,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자부하는 자신이 사랑에 취할까봐 겁이 났을까. 바자로프는 결국 사랑으로부터 도망친다.
이데올로기보다 더 중요한 것
한 정치평론가가 “한국 진보주의자는 싸가지가 없다”고 했던 말이 이해가 됐다. 계급주의, 농노제도가 철폐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바자로프는 왜 이렇게 당돌하고 싸가지가 없을까. 바자로프는 친구 아르카디의 집에 놀러가서 친구의 큰아버지 파벨의 세계관과 자신의 것이 다르다고 반항적으로 대꾸하고 급기야 결투까지 응하는데, 젊은 측에 속하는 내가 봐도 버릇없어 보인다. 현실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딱히 대안도 없어 욕하고 비난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는 젊은 세대의 무기력함도 보였다.
한편 바자로프가 이해가 된다. 이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해가 된다. 기성세대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고 허세만 부리고 형식만 따진다고 비난하지만 내 안에도 역시 그런 모습이 있다. 불만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없다. 사랑에 회의적이면서도 희망할 때도 있다. 사랑에 과감하지 못하고 겁내는 내 모습을 보는 것도 같았다.
작가 투르게네프는 실제 귀족 집안 아들이지만 계급주의, 농노제도에 반대했고, 러시아를 떠나 서유럽에서 유부녀 프랑스 오페라 가수 비아르도와 깊은 우정 또는 사랑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결말은 허무하다. 의술을 믿었던 바자로프는 시체를 해부하다 감염되는데 의술로 치료가 불가능해 결국 사망한다. 아직 급진적인 바자로프의 사상이 받아들여질 시기가 아니었음을 작가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자로프의 무덤가에 핀] 이 꽃들은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이나 무심한 자연의 위대한 평온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영원한 화해와 무궁한 생명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이데올로기, 원칙 다 중요하다. 하지만 이상에 매몰돼 현실을 보지 못하면 더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을까. 이 책은 당시 신세대와 구세대 양측으로부터 비난받았다고 하니 작가가 의도를 전달하는데에 성공한 듯보인다. 어느 한 세대의 인물을 빌려서 그 세대를 대변할 수도 있었는데 작가는 세대 간극을 좁히려고 노력하지 않은 두 세대 - 바자로프와 파벨 - 모두 비난한 것같다. 그래서 두 세대에게 다른 세대의 이해가 필요함을 알려주는 것같다. 젊은 세대가 덜 건방지고 기성 세대가 덜 꼰대스러운 날이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