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13 사진
2012년 03월 13일에 폰으로 찍은 사진
당시에 썼던 글
11시쯤 집에 들어가는 길에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지방법원 - 전라도 박종남 - 대포 통장 - 공범" 등등의 얘기가 들려왔다. 법원이라는 말에 10대 시절의 기억이 나 순간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어눌한 말투에, 읽고 말하는 티가 나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버지 덕분에 자주 다녔던 법원의 기억은 직접 전화를 해줄 정도로 친절한 곳도 아니었다.
나는 순진하게 되물었다.
- 보이스피싱이죠?
여자는 무척 당황하더니 다짜고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찌 됐건 9시 30분까지 서울지방법원으로 출두하라고 강조했다.
- 송장이나 보내주세요. 근데 저희 집 주소는 아세요?
괘씸했던 건지 여자는 신경질을 내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오래도록 연락이 끊겨있었던 형제의 부고를 떠올린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형제들은 중심을 잃을 것처럼 방황했다. 돌아가시기 전 가족들에게 잘했던 분도 아니었다. 하지만 날 제외한 형제들은 이상하리만치 방황했다.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을 만났고, 가지 말았어야 할 곳을 드나들었다.
그러다 형제 하나와 연락이 끊겼다. 막다른 길로 들어선 직후의 일이었다. 그러다 연락이 끊긴 형제의 첫 소식이 전해졌다. 경찰의 부고 소식이었다.
그는 집에서 가장 똑똑했다. 공부도 잘했고 시도 잘 썼다. 대입을 앞두고 취미로 쓰던 시를 부모님에게 들켜 호되게 혼났던 기억이 있다. 나 같은 글쟁이가 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때 꺾여버린 건지 그 후로 그가 쓴 시는 본 적이 없다.
2012년 3월 13일에 적었던 글처럼, 형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가족들은 그가 아빠처럼 빚을 남기고 죽었을까가 가장 걱정됐다. 또다시 상속 포기 서류 접수를 위해 법원을 드나들어야 하나라는 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아빠는 그를 많이 아꼈다. 엄마는 툭하면 둘이 많이 닮았다고 했다. 그래서 가족 중에 가장 먼저 아빠를 따라갔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그가 막다른 길에 들어섰을 때 가족들은 그를 되돌리기 위해 몇 번이나 애썼다. 하지만 그는 뭐에 홀린 것처럼 직진만 했다.
오늘도 난 다짐한다. 막다른 길이라고 느끼면 그냥 되돌아 나오자고. 그와 같은 결론은 얻지 말자고.
CHS <영혼과적>
https://youtu.be/xd4k64qmgio?si=ibKrro825CGaHz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