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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balt Jan 20. 2023

너와 함께, 갤러리 산책

     

      나의 세 아이 중 유일하게 "그림 보러 가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 바로 막내 레아다. 레아는 오빠와 언니가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언제 집에 가?"라고 묻는 것과는 다르게 나보다 더 섬세한 눈으로 작품을 바라본다. 작품에 따라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자기가 아는 형용사를 총동원해 표현하기도 한다. 조각작품 주위에서는 숨바꼭질을 하고 싶어 하고, 그야말로 자신의 온 존재로 느낀다. 오디오가이드를 들으며 작품에 집중하고 연구하고 싶을 때는 나 혼자 미술관에 가는 것을 당연히 선호하지만, 내가 문자로 작품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과는 별개로, 레아와 함께 그림을 보면 나도 순수하게 미술작품 자체를 감상하는 아이가 된다. 내가 배운 미술사안에서 작품을 해석하거나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작품의 크기, 색감, 질감에 대해 탄성을 지르며 그저 바라본다. 

가나아트센터 <호세 팔라> 전에서 레아.

      미술관이 주는 웅장한 공간감이 아닌 동네 구석구석 위치한 소박한 갤러리들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간감 때문인지, 아이는 '그림들의 집'에 초대받는 느낌인가 보다. 단독주택을 개조해 만든 갤러리가 많은 평창동에 집들 사이사이에 위치한 갤러리들은 공간부터가 서로 다르고 취향도 뚜렷해 아이도 지루함 없이 또 다른 곳에도 가보자고 조른다. 가나아트센터, 마스 갤러리, 이정아 갤러리, 키미 아트, 갤러리 세줄, 삼세영 갤러리, 수애뇨 등의 공간은 그림과 자연전망으로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같은 공간이어도 계절이 변하고, 전시가 바뀔 때마다 찾아가도 지루할 틈이 없다. 게다가 갤러리마다 전망 좋은 카페를 가지고 있어 쾌청한 휴식을 즐길 수 있고, 이 동네에 터를 잡은 작가들의 사랑방이기도 한 갤러리 카페에서 작가를 마주치는 기회가 적지 않다. 

    

박영남, <Monet after me>, 2021.


예술이 삶에 깊숙이 스며든 이 동네는 번잡스럽지 않게 조용히 흘러간다. 갤러리와 주거공간이 고요하게 어우러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갤러리는 미술관과 다르게 대관료나 작품판매로 수익을 창출하는 철저한 상업 공간이다. 작품이 팔리게 되면 갤러리는 판매가의 50%를 수수료로 가져간다. 갤러리를 산책하듯이 다니면서, 작품을 사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간 적은 없지만 전시장을 떠나도 생각이 나고 보고 싶은 그림을 마주친 적은 있었다. 손에 직접 안료를 발라 촉각을 직관적으로 활용해 자연을 탐구하는 박영남 작가의 <Monet after me>라는 작품이었다. 작품 자체가 자연을 탐구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 같아서 마음에 드는 연작이었다. 처음으로 가격을 물어봤다. 4개 연작인데 하나에 사천만 원이라고 했다. 사겠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그저 궁금했을 뿐이었지만, 무언가를 원할 때 "사고 싶다"라는 감정이 좋고, 편안한 것은 처음이었다. 못 살 것을 전제로 생각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그 감정이 좋았다. 내 공간에, 저런 밝은 그림이 걸려 있으면 참 좋겠다,라고 상상하는 그 순간이. 

     그럼에도 요즘은 그렇게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으면 레아가 먼저 떠오른다. 레아의 표현을 듣고 싶어서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사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아이의 눈으로 순수하게 보고 싶기 때문이다. 갤러리스트에게 작품의 가격표 태그를 확인하기보다는 아이처럼 그렇게, 탄성을 지르고 싶어서. 혼자 하면 민망하지만, 아이가 옆에 있는 엄마라면 어떤 탄성도 지를 수 있다. 어느 갤러리 밀집 지역보다 여유롭고 우아하지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평창동 갤러리를 산책하듯 다닐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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