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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balt May 19. 2023

아내를 그린 화가 - 에드워드 호퍼

 브라질리에가 자신의 뮤즈였던 아내를 그렸듯, 서울시립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에서도 아내를 모델로 그렸던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를 만날 수 있다. 브라질리에의 아내가 그의 작품에서 주가 되어 그에게 일으키는 사랑과 꿈을 가득 담아내었다면, 호퍼의 그림에서 아내 조시는 호퍼가 완벽하게 설계하고 치밀하게 계산한 작품 안의 모델로 완벽하게 기능한다.

      호퍼와 아내 조시는 4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했고 과묵한 것으로 유명했던 호퍼를 대신해 조시가 대외적 매니저 역할을 담당했다. 조시는 일기에 호퍼와 할퀴고 때리고 싸우고, 보수적인 남편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애정도 그 틈새에 기록했다. "내가 평상시에는 참 좋아하는 그 얼굴에 긴 상처 두 개가 생겼다"와 같이 말이다. 40년을 함께한 부부사이를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으나 이 둘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조시는 호퍼의 작품을 "아이들"이라 불렀다. 유화 작품뿐만 아니라, 수채화, 드로잉, 스케치를 보관, 관리하고 작가 사후 휘트니 미술관에 기증했기에 호퍼의 작품이 한 데 모여 서울에도 올 수 있었던 이유다.    

     특히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에서는 호퍼의 초기 작품부터 대표작까지, 방대한 양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의 초기 드로잉조차 거장의 밑그림과 드로잉도 얼마나 생명력을 뿜어내는 존재감을 과시하는지, 홀린 듯 작가의 선을 바라보게 된다. 전시실 내부 일부분 빼고는 사진 촬영이 금지라 매우 아쉬울 만큼, 호퍼의 작품들은 드로잉, 스케치, 생계를 위해 그렸던 일러스트, 판화, 포스터, 유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도시, 자연풍광, 교외, 인물들을 탐구한다. 이미 현대미술 역사에 남을 그림을 그릴 것이라 확신하면서 그 소재를 찾고 있듯이 말이다.


<햇빛 속의 여인>, 1961.  호퍼 전시에서 촬영이 허가된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품들은 호퍼의 아내 조시가 모델이 된 홀로 있는 여인의 그림이다. 어떠한 사건도 짐작할 수 없는 그저 일상적인 한 순간인데, 관람객은 그저 호퍼의 공간 속으로 끌려 들어가, 말없이 공간을 장악하는 한 여인을 그저 바라보게 된다. 아내를 모델로 그렸으나 특징적인 것은 어떠한 애착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인과 느껴지는 감정적 거리는 관람객에게도 전달되어 긴장감이 온몸으로 전달된다. 호퍼를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로 명명하지만, 인물이 등장하는 호퍼의 그림은 인물의 심리적 사실주의가 관람자에게까지 침범해 들어온다.


<정오>, 1949.

    집과 아내. 어찌 보면 가장 친밀하고 안정적인 대상이다. 호퍼 그림에는 자신의 고향 나이액의 집들이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미국식 전통적인 주택을 그렸어도 익숙함, 편안함 대신 이질감과 긴장감이 감돈다. 말없이 강렬한 미스터리 같은 이미지에 심리적 긴장감을 느끼면서 이미지 하나가 관람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각의 내러티브를 만들게 한다.

    나에게 <정오>에 나오는 여인은 미국 시골마을의 보수적인 관념과 무미건조한 삶에 미쳐버릴 것 같아 어떤 사건이라도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여자로 보인다. 이 여인으로부터 하나의 스토리가 시작될 만큼, 호퍼의 작품은 아직 쓰이지 않은 관람객 각각의 이야기들을 상상으로든,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든 써 내려갈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을 터 준다. 작품은 스스로 말한다며, 자신의 작품에 대한 어떠한 해석이나 설명을 하지 않았던 호퍼는 관람객 각각이 그림을 보며 자신의 심리를 짚어보기를 유도한다.

케이프 코드의 아침, 1950.

    한 여인이 아침이 맞이한다.

안온해 보이는 집 안 보다는 울창한 숲을 응시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일상적인 아침인데, 매일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내는 아침이 갖는 신비로움, 그리고 그 고요한 공기가 여기까지 흘러오지만 닿지 않는 인물과의 단절이 역설적으로 우리가 호퍼의 그림 속으로 빠져드는 이유가 된다.

   여인은 유리창 안에 갇혀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문을 열고 숲으로 가로질러 나아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다. 숲에서 무언가를 만날 것 같아 두려워도 오늘은 꼭 나가보리라 다짐하고 있는 것 같다. 조시 호퍼의 삶인 것 같기도 하고 나의 삶 같기도 하다. 바라보다 보면 나의 심리와 무의식에도 닿을 것 같아 그저 바라보게 된다.

     아마추어 배우였던 조시는 호퍼와는 정 반대로 키가 작고, 가만히 있지 못하며 쉬지 않고 말하는 성격이었다. 호퍼의 그림에서 조시는 말이 필요 없는 존재력을 과시한다. 연극배우처럼, 많은 관람객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지만 관람객이 차마 닿지 못하는 스타 같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도 닿을 수 없는 인물의 그 분리된 심리적 독립성으로 인해, 우리가 현대인들과 심리적 결핍을 공유하는 조시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것 역시 역설적이다.

   

참고:


https://www.smithsonianmag.com/arts-culture/hopper-156346356/

https://www.nytimes.com/2022/11/22/arts/design/edward-hopper-whitney-museum.html

https://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22/oct/07/artist-of-loneliness-edward-hopper-depended-on-his-wife-josephine-nivison-says-fil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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