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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balt Oct 11. 2023

고향 없는 경기도 여자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도에서 자란 나는 아마 뼛속까지 경기도 여자라 할 만할 것이다. 심지어 부모님이 내가 열 살 때 경기도의 한 아파트를 장만에 지금껏 살고 계시니 토박이라는 말이 적합하다. 그런데 그 지역에, 그 아파트에 아무런 감정이 없다. 매우 싫은 것도 강력한 감정이기에 아무 감정이 없는 것보단 나을 것 같다. 애정도, 미움도, 어떠한 감응이 없는 나의 고향. 그래서 나는 고향이 없는 느낌이다. 


명절이면 어떤 감정이든 '고향' 느껴보고 싶기도 해서 며칠을 엄마 집에 머무른다. 학령기에 느꼈던 답답함, 내 삶이 이 지역에 테두리에 제한된 것 같은 마음이 다시 상기되는 것 외에는 아파트 놀이터, 인공적인 공원에서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돌아온다. 


서울은 좌석버스를 타면 40분 정도 걸리는 먼 거리, 그렇다고 산과 바다가 있는 시골도 아니고, 지방 광역시도 아닌 애매한 지역. 차라리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라면, 그 지방만의 특색이 있는 도시라면 고향에 가는 길이 다르기도 할 텐데. 나처럼 아무 감정 없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 없으면 특별히 찾아가고 싶지 않은 곳을 고향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콘크리트 세대'여서라고 하기엔,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오히려 자신이 나고 자란 '구'에 대한 애착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강남구, 광진구, 용산구 등 동네 프라이드 일수도 있겠지만 그 지역 곳곳에 기억과 감정이 다채로웠다. 나는 그저, 내가 자란 곳에 속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자문해 보니 물론 경기도 보단 서울이나 과천 정도면 더 좋았겠다, 차라리 물과 산이 있는 시골이면 좋았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경기도에 대해 특별한 안 좋은 감정도 없기 때문에 더 애매하다. 


나의 고향이 경기도 남부 어디라기보다는 애증 섞인 지하철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다. 나고 자란 경기도 어디와는 다르게, 나에게 지하철은 짠하고 애정 어린 대상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매일 아침 새로운 세계로, 보다 나은 가능성이 있는 세계로 인도해 준 고맙고 짠한 지하철. 같은 지역에 사는 친구들과의 좋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추억을 담아 날랐던 지하철이기 때문이다. 물론 출퇴근 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내는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매우 증오스럽기도 하다. 서울로 통학하던 시절, 끝없이 탄 지하철의 답답함, 그리고 그 특유의 냄새가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어딘가에 체취처럼 묻어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자신이 속한 곳은 밖으로 나왔을 때에야 비로소 인식이 생긴다.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인식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느꼈다. 나는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과천으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서울과 경기도 각지에서 온 아이들이 서로 분위기가 달랐다. 아무래도 가장 프라이드가 있고 화려했던 아이들은 분당에서 온 아이들이었고, 과천에 사는 아이들도 그보다는 순박하면서 세련된 분위기가 있었다. 수원, 안양, 안산에 사는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놀았다. 집도 어차피 머니 같이 지하철을 타는 동안 상대적으로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았을 것이기에 지역에 따라 구분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느 날 서울에 살던 친구가 내가 사는 지역에 올일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나와 같은 지역의 남자아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친구와 가던 중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지던 친구가 말했다. "여기 사는 남자 하고는 연애를 못할 것 같아." 그렇게 그 친구는 마음을 접었고 분당 사는 아이와 화려한 연애를 했다. 


지금의 남편이 된 남자친구도 3년간의 연애를 하는 동안 푸념을 했다. 남자들 사이에서, "예쁘지 않은 것은 용서가 돼도 집이 먼 것은 용서가 안된다"는 말이 있다면서 말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데이트에서 집에 데려다준 것은 지금도 매우 고맙고 가상하게 생각이 되지만 나에게는 서울과 경기를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은 고등학생 때부터 체화된 일상이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공간을 찾고 싶은 일종의 소유욕이 있다. 물질적 소유가 아닌 내가 이곳에 속한다는 느낌. 어느 공간에 들어가면 화려하고 누추하고를 떠나 나를 있는 그대로 안아줄 것 같은 공간을 찾는 과정들은 나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 다양한 경험을 누릴 수 있는 곳, 그래서 공간에 대한 다채로운 감정을 체화시킬 수 있는 곳, 메말라 있는 감정에 색이 입혀지는 곳. 어떤 공간에 대한 물질적인 소유보다 그 공간에서의 감정이 나의 마음 구석구석 체화시킬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과정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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