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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balt Oct 18. 2023

평창동 신혼집

북한산 위, 산 위에 자리 잡은 동네. 밤에는 서울의 어떤 곳보다 깜깜하지만 아침이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서둘러 아침을 준비하게 되는 곳. 르네상스 회화에서 예수가 승천하는 배경에 그려진 비현실적인 하늘에 감탄하게 하는 곳. 나는 그곳에서 뿌리를 내렸다.


첫 신혼집은 3층짜리 단독주택을 개조한 다세대 주택이었다. 200평 가까이 되는 단독 주택에 살던 노부부는  주택을 몹시 처분하고 싶어 하셨으나 여의치 않자 3개의 층을 나눠 세를 주었다. 남대문에서 옷장사로 부자가 된 '사모님'은 나를 새댁이라 부르며 맞이해 주셨다. 워낙 손이 크셨던 주인아주머니는 요리 하나 하기에도 쩔쩔 매고 있던 내게 부침개며, 나물을 '배달'해 주셨다. 은퇴하셔서 매일같이 마당에 물 주고 나뭇잎 쓰는 것이 일이셨던 주인아저씨는 남편을 불러 술이라도 하실 때면 그렇게나 행복해하셨다.


같이 살던 아들네 부부가 나간 자리에 우리가 들어갔으니, 주인댁도 우리를 그 연장선 상에서 대하는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세계가 아직 확립되지 않은, 뭣도 모르는 20대였기에 이웃과의 경계가 흐릿한 그곳에서 행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매일아침마다 거실 한가득 아름다운 전망으로 채워주는 그 집에서,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물도 맞아보고, 오래된 싱크대에 물이 내려가지 않아 부엌에 물난리가 나 쩔쩔 메기도 했다. 주택이 여기저기 고장 나 수리업체를 불러 메우고 공구장비를 가지고 다니시는 집주인아저씨를 보며, 그 집이 노부부에게 족쇄처럼, 애꿎은 아들처럼, 혹은 여기저기 몸이 고장 나는 그 노부부 자신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저 추억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처음으로 나의 몸 일 부분에 '장소감'이라는 것이 생겼다. 비록 오래돼서 경제적으로는 가치를 상실한 그 집은 마치 한 사람처럼 기억되기 때문이다. 아파트에서는 경험할 수도 없는 사건사고가 터질 때,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한숨, 걱정으로 머리가 아플 때도 마당에 열리는 감나무로, 색색깔로 물든 북한산을 한껏 보여주는 그 집이 나에게 미안하다며 보듬어 주는 것도 같았다.


곧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 집은 더 특별해졌다. 겨울에 태어난 아이를 안고 따뜻한 거실에서 테라스에 소복이 테라스에 쌓이는 눈이 처음으로 보드랍게 느껴졌다. 봄에면 꽃과 채소를 심고, 가을에는 마당에서 열리는 감나무를 따서 먹었다. 다시 겨울을 맞았을 때, 아장아장 걷는 아이는 작고 통통한 손으로 눈을 만지며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 집에 살았기에만들었 수 있었던 기억이었다.

어떤 공간에서 특별함을 느낄 때, 고마움이 생기고 고마움을 넘어 짠하고 애잔하기까지 하면 그 공간은 '장소'가 된다. 물질적으로 그 공간을 소유한 것이 아니어도, 그때 그 시점, 그 장소와 함께한 기억만큼은 온전히 내 것이다."공간에 우리의 경험과 감정이 녹아들 때, 즉 공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때 그곳은 장소로 발전한다"는 이-푸 투안의 말처럼, 나에게 처음으로 장소에 대한 애착이 생긴 계기였다.

집에, 장소에 애착이 생길수록, 몸은 분주해진다는 것도 이 집에서 처음 알았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해야 할 일들이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고나 할까. 쉼 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볼 때는 아름답지만 쓸지 않고 방치하면 썩고 냄새가 난다. 우수수 떨어지는 나의 머리카락처럼 얼마나 자주 떨어지는지. 낙엽 쓰는 것뿐만 아니라 눈을 쓸어야 할 때는 펭귄처럼 꽁꽁 싸매고 나가 쓸어야 했다. 그랬기에 더 계절의 변화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애정은 자신이 쏟은 만큼만 가치를 더하는 것은 사람이나, 장소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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