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볼 수 없는 내 얼굴

메이킹매거진 - 웬디앤브래드

by 룬아

장마다. 계속.

장마라는 건 비가 온다는 얘기고 비가 온다는 건 날이 흐리다는 얘기고 날이 흐리다는 건 화면도 흐리다는 얘긴데 나는 촬영용 조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그냥 찍기에는 얼굴의 음영이 아수라 백작 같이 져서, 책상 옆에 서 있는 스탠드라도 켜보았다. 결국 내 얼굴은 술톤으로 찍혔고 나는 색감 조정을 할 줄 모른다.


그래도 나름 세 번째라고 말하는 모양새가 더 나아진 것 같아 보인다. 편집은 마술이다. 실제 촬영 때에는 두서없이 떠드느라 내용의 순서가 뒤죽박죽이었고 다섯 시간째 노트북 앞에 앉아있던 나는 다짐했다. 다음에는 간단한 대본, 아니 목차라도 만들어놓고 찍어야겠다고.

문제는 내용이 아니다. 내용이 제일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내용은 얼마든지 앞뒤로 옮길 수도 있고 사족을 잘라낼 수도 있다. 부족한 부분은 자막으로 채워 넣을 수도 있다. 하지만 표정과 눈빛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열심히 찍고 편집한 영상을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나 평소에도 말할 때 표정 저렇게 띠꺼워?'였다. 혀는 분명히 좋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표정은 시비를 거는 것 같다. 자막과 소리를 끄면 큰일 납니다. 원래도 크고 똘망한 눈은 아니지만 게슴츠레한 것이, 잠을 잘 못 잔 것 같다 (두 돌 조금 지난 아이 키우면서 항상 잠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 되게 재수 없어 보인다고 말했더니 착한 지인이 '좋은 거 알려주는 도시 언니' 같다고 위로해주었다.

Screen Shot 2020-07-29 at 2.27.40 PM.png

얼굴을 보면서 촬영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화면이 아닌 렌즈를 봐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끔씩 모니터를 힐긋, 하는 장면이 잡히기도 하는데 매우 아마추어스럽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렌즈를 또렷하게, 호감적인 눈빛과 기분 좋은 표정으로 뚫어보는 연습을 많이 하는 방법밖에 없다.


물론 시청자들이 나만큼 내 얼굴을 신경 쓰진 않을 거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게 딱히 이득이 되진 않는다. 이걸 읽은 사람들은 영상을 보며 내 표정이 띠껍다고 생각하게 될 테니. 얼굴도 말투와 같다. 계속 의식적으로 연습할 필요가 있다. 유튜브 때문이 아니라, 내 삶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그래서 기록을 남긴다. 영상이 아닌 평소에도 자꾸만 보고 싶어 지는 얼굴을 갖게 되는 날이 오길 바라니까. 그러면 오늘과 그 날의 얼굴을 흐뭇하게 비교해봐야지.


내용은 매우 훈훈하니 한번 봐주세요 https://youtu.be/iq1Nj5s0l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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