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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드라운 고슴도치 Apr 24. 2022

12명의 식탁으로 드루와 드루와

맛에 대한 12명의 이야기, '요즘 사는 맛'을 읽고

흔히 한국인은 밥에 미친 민족이라고 한다. 밥 한 번 먹자,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국물도 없다처럼 입에 붙은 말들부터 '식구'라는 것도 결국 같이 먹는 사이를 말하는 것이라 마치 sex와 gender처럼 그 범주가 혈맹과는 약간 다른 모양새다. 실제로 그런 식구들이 매일 살 부딪고 사는 가족들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해주기도 하고, 그 식구의 범주가 넓어가기도 한다. 이렇게 먹고사는 것에 진심인 민족이 또 있을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아마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밥'이라고 하지 않을까.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 메뉴를 생각하고 그 생각으로 퇴근까지 버텨내는 것처럼.


그걸 그냥 웃겨, 진짜 그렇긴 하네 하지만 그래도 웃겨, 좀 과장된 얘기지만 웃겨, 하고 생각하던 삶에서 문득 먹고사는 문제가 진지하게 다가온 것이 작년이었다. 어려서도 아무리 봉사활동 시간 많이 준다고 해도 기아체험 24시는 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고, 아침밥도 꼬박꼬박 먹어야 했으며(그건 나이 들면서 귀신같이 사라졌다. 대신 군것질을 하는 거 같은데...), 먹는 즐거움을 포기 못해서 다이어트도 해볼 생각은 해본 적이 없고, 아직은 고기 맛과 커피맛은 포기하지 못하는데 좀 오바스럽지만 그게 나의 삶의 근저에 있는 맛이라서 그렇다는 다소 없어 보이는 핑계를 댈 수밖에 없으며, 스트레스받으면 더 먹지 왜? 하던 내가 '먹는 것은 삶의 의지와 직결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먹는 일은, 그 일을 끝맺고자 하는 의지와 그것으로 인해서 삶을 끌어올리고 삶의 만족을 얻기 위한 스트레스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스트레스받는데 왜 못 먹어?'라는 폭력적인 발언을 했던 것을 반성한다. 스트레스가 좀 다른 방향으로 올 때, 삶이 길을 잃고 헤매고 하루하루 눈을 뜨는 게 거나한 다짐과 함께여야 하는 나날들에 나는 문득 식욕을 잃고 더 방황했다. 마치 먼지 한 톨이 되어서 날아가버릴 것처럼. 들기름을 붓고 정좌하고 앉아 소신공양을 기다리는 등신불처럼. 한 치 앞을 볼 수 없어서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런 뜻이었을까? 그때는 먹고 싶지도 않았다. 살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나는 그때 생각했다.


그런 시간들을 어떻게든 헤쳐가면서 식욕은 삶의 의지라는 것을 뼛속 깊이 느꼈다. 더불어 못 먹는 것이 없어서 그저 맛있는 것을 먹을 기회가 생기면 먹었을 뿐, 먹을 것에 대한 조예가 깊지 못해서 와인 취향이나 스파게티 취향이나, 고기 취향이나 혹은 위스키 취향 같은 것을 갖지 못한 나는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기만 했는데, 이때 그들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졌다. 아 이 사람들은 그저 먹을 것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고 더 나아가서 살아가는 맛에 대한 철학이 있는 사람들이구나. 물론 맛을 모른다고 철학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맛을 안다는 것은, 특히나 무언가의 맛에 대해 공부하고 깊이 천착한다는 것은, 거기에 생각을 실어나를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진득하고 강한 삶의 의지가 화르륵 불타올라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차갑게 식어있지도 않은 채 갓 지은 따뜻한 밥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많이 궁금했다. 한동안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거리면서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걸핏하면 끼니를 거르며 소신공양하듯이 가벼워진 체력을 정신력으로 버티고 끌고 가고 있었던 나를 끌고 나가 주변 사람들이 내밀었던 커피 한 잔, 밥 한 끼, 밥 한 번 먹자는 연락 한 통이 소중했는데 '요즘 사는 맛'이라니.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사는 맛이라니.


그 사는 맛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들의 식구가 되고 함께 식탁에 앉는 기분이 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에 한 챕터씩. 12명의 식탁에 앉아보기로 하고 책을 열었다. 


이들의 식탁에 앉기 위해 나는, 다는 찾지 못했지만 이들의 책이나 노래를 찾아서 목소리를 듣고 그들을 다시 만났다. 짧게라도 그렇게 하고 돌아오면 정말로,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생각해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진들의 예술과 말과 생각과 행동이, 먹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오늘 먹은 밥에게 미안했다. 밥아 미안해. 똥만 싸서 미안해. '밥값'을 한다는 게 무엇인지,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식철학을 읽으며 느껴졌고, 나는 어떻게 밥값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주옥같아서 하나하나 뽑기가 너무 어렵지만, 필진끼리의, 혹은 필진이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결국 '음식'이고, 함께 먹는 것에 대한 생각과 정보와 근황을 공유하는 것으로 확장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책에 #김겨울 님께서 #요조 님이 인스타그램에 "요즘은 용을 써서 딸기를 먹는다."라고 올리신 것에 무릎을 치고 공감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소소하게, 자신의 삶에 대한 의지와 철학을, 또 사는 맛을 남에게 전파한 것은 아닐까? 그걸 본 나도 딸기를 매우 좋아한다. 올해 딸기 비싸다던데. 딸기 먹기 위해 돈 열심히 벌어야겠다.  


그래서 나는 음식 스타 그램 아주 좋아한다. 혹자는 말한다, sns에서 사람들은 행복을 전시한다고. 별 것 아닌 삶을 매우 행복하고 대단한 것처럼 전시한다고. 그래서 sns가 삶의 폐단이라고. 근데 늘 생각한다. 그럼 안 되나?

#박정민 배우의 글을 읽기 위해서 배우님의 #쓸만한사람 을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배우님이 그랬다. 대부분의 사람은 찌질이라고. 그렇지 않나. 대체로 지질하게 사는 게 우리 아니었나. 그런 인생에 한 줄기 빛처럼 맛있는 것이 들었는데. 왜 자랑 좀 하면 안 되는가. 맛있는 거 많이 올려주길 바란다. 그 김에 아티스트님들 인스타 쭉 다 팔로우해놓고 나도 좀 더 한 식구가 되어봐야겠다.


이 책은 그런 음식스타그램을 좀 더 긴 글로 표현한 것만 같다. 어떤 글은 가벼운 맛자랑 피드 같기도 하고, 어떤 글은 맛에 대한 단상 같기도 하고, 또 어떤 글은 무작정 먹어왔던 음식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글 같기도 하다.  요조님의 고기와 커피에 대한 성찰과 실천에 공감하지만 나는 그래도 한동안은 고기와 커피는 끊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그만큼을 다른 방법으로 보전할 방법쯤은 생각해보게 되지 않을까. 내 삶의 맛을 포기 못하는 대신에, 그래도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우리 식구의 사는 맛을 지켜야 하니까.


이책의 또 매력은 위에 적은 음식스타그램스러운 부분에 있다. 말투다.

책 한 권에 내가 좋아하는 열 두 사람의 말투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밀리의서재오디오북으로 요조님의 말투를 들을 수 있으니 들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위에 언급한 박정민님의 #쓸만한사람 을 박정민님의 목소리로 듣고 오면 박정민님의 글을 웃지 않고는 볼 재간이 없을 것이다.


책 내용을 스포하는 서평을 지양하다 보니 너무 감상 위주인데, 이 책은 문장을 뽑는다는 게 무의미하다. 하나하나가 정말 꼭꼭 씹혀 술술 넘어가버린다.


다만 컵라면을 생각하며 한라산을 오른 요조언니처럼, 살 빼라는 감독님의 잔소리를 버티려면 정신력을 길러야 하고 정신력을 기르려면 체력을 길러야 하니까 아침은 더욱 든든히 먹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수면욕과 게으름 때문에 놓쳐버린 모든 아침밥이 아쉬워지는 박정민 배우님처럼. 우리는 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결국 우리처럼 살고, 먹고, 생각하고 산다. 책을 펴고 그들의 식탁에 함께 앉아보기를. 그래서 나는 이 서평도 식탁에서 썼다.


열 두 분의 식탁에 나를 초대해주셔서 삶의 의욕을 높여주시고, 덕분에 수면 점수가 마구 높아지는 삶을 살 수 있게 보탬을 주신 위즈덤하우스에 감사드린다. 여러분도 드르와.(박정민 배우님이 그랬다. #황정민 배우님이 드루와 드루와 하는 바람에 그 소속사로 들어가게 됐다고. 그러니까 님들도 드루와 드루와)


(사실 쓰고 나서 고백하는데 재밌어서 하루에 여러 사람의 식탁에 올랐었다는 것은 안 비밀이다. 살찌겄네...)


#도서협찬

#서평단

#요즘사는맛

#위즈덤하우스 @wisdomhouse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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