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piphany

#6. 나로서도 괜찮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나로서 존재하면서 전체 속에서의 나로서도 존재하라.

by Da Hee

해외 생활이 길어지고 나이가 들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장점은, 나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세상 속에서 내 자신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가 소수자로서의 해외 생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중년에 접어들며 쌓인 연륜의 결과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나는 내면적으로 상당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 변화를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내면의 평온함과 자신을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과거의 나는 스스로의 불완전함에 끊임없이 불만을 품었고,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용납하기 힘들어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불완전함조차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더 이상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지 않으며, 홀로 떨어져 살아가는 삶에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는 단순히 ‘내려놓기’나 ‘미움받을 용기’와 같은 배움의 적용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의식적인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다가온 마음의 상태에 가깝다.


이제는 나 자신이 특별히 대단하거나 하찮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와 타인을 단순히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존재로 바라보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내면의 불안감과 집착이 줄어들었다.


이를 더 잘 설명하기 위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예전에는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른 후 자책하거나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하며 부끄러워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감정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억지로 떨쳐내려고 애쓰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자연스럽게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며, 실수가 내 삶 속의 가벼운 에피소드로 자리 잡는다. 이는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라, 자신에게 너그러워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면서 나 자신도 놀라움을 느낀다. 본래 나는 예민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지금의 변화는 나에게 무척 신선하고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과거를 돌아보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늘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곤 했다.
“모나면 정맞는다.”
“둥글게 살아라. 그게 너에게 좋다.”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살아라.”
그들의 조언이 나를 위한 진심임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저 자신들의 삶을 정당화하려는 자기합리화로 느껴져 거부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세상에는 어느 상황에서건 높은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인간, 모순 없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나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던 내 자신에게 구하지도 않은 조언을 건네는 이들이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했던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자기합리화가 아니라, 경험과 연륜에서 우러나온 삶의 지혜였던 것이다.


물론, 인간은 본질적으로 모순된 존재다. 아무리 지혜를 쌓아도 그 모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그것이 나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설령 다른 사람에게 비난을 받더라도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 이는 강한 자아(Ego)나 왜곡된 자기애에서 비롯된 믿음이 아니다. 평범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이전보다 훨씬 더 쉽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내면의 고요함을 자주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나이 들며 얻게 된 삶의 선물이자, 스스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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