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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널북스 Channel Books May 16. 2021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_ 나쓰메 소세키

고양이 눈으로 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평소에 일본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거의 유일하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정도일까? (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사실 나에게는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라, '상실의 시대'가 더 익숙하다. 도대체 왜 그런 이름으로 번역해서 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쪽이 더 멋있다고 생각했나 싶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특유의 문체가 개인적으로 잘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였을 것이다. 읽어야 할 책은 넘쳐났기에 굳이 찾아 읽으려고는 하지 않았다. 얼마 전 문예출판사에서 도서 리뷰를 위한 책 지원을 받으면서 제목에 눈이 가서 신청하였다. 제목은 들어 본 적이 있으나 내용은 전혀 모르던 책이다. 


세상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라니, 신선하고 고상하다. '저는 고양이입니다'처럼 동화스럽지도 않고, '나는 고양이다'처럼 평범하지도 않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니 뭔가 고상하고 하대 받는 느낌이 묘하다. 도도한 고양이의 매력이 제목에서 흥미를 끌었다. 


© olegixanovpht, 출처 Unsplash



막상 읽기 시작하니 내용은 그 이상이다! 

550 페이지 가량의 결코 짧지 않은 소설인데, 실제로 화자가 고양이다. 일본에 근대화가 시작된 1900년 초반 메이지유신 시대의 이야기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어떤 선생님 집에 정착하면서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의 특징과 인간관계를 흥미롭게 관찰하고 서술한다.  급변하는 시대 변화 속에서 선비나 선생님이 존경받던 시대에서 기업가의 시대가 도래하는 시대상을 흥미롭게 이야기해 준다. 



나쓰메 소세키[ Natsume Sōseki , 夏目漱石(하목수석) ]1867.2.9 ~ 1916.12.9


일본 소설가 겸 영문학자. 그의 작풍은 당시 전성기에 있던 자연주의에 대하여 고답적, 관상적(觀賞的)인 입장이었으며, 주요 저서로는《호토토기스(두견)》,《나는 고양이로소이다》,《우미인초》,《도련님》,《풀베개》,《산시로》, 《그후》,《문》,《피안 지나기까지》,《마음》등이 있다.

도쿄[東京] 출생. 본명 긴노스케[金之助]. 도쿄대학교 영문과 졸업. 제1고등학교 시절에 가인(歌人)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를 알게 되었다. 도쿄고등사범학교·제5고등학교 등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1900년 영국에 유학한 후 귀국하여 제1고등학교의 교사로 재직하였고, 1905년에 《호토토기스(두견)》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1906)를 발표하였다. 1907년에 교직을 사임하였으며 아사히[朝日]신문사에 입사하여 《우미인초(虞美人草)》를 연재하고 《도련님》(1906), 《풀베개[草枕]》(1906) 등을 발표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나쓰메 소세키 [Natsume Sōseki, 夏目漱石(하목수석)] (두산백과)




무려 1900년에 국가에서 임명한 최초의 유학생으로 영국 런던에 유학을 다녀온다. 유학 후 도쿄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소설을 썼는데, 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이 대박을 터뜨리며, 교수를 그만두고 작가로 활동한다. 

재밌는 것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 영어선생님으로 묘사되어 있고, 자신의 이름을 패러디한 '소세키'라는 사람의 문학 세계에 대하여 비판하는 부분도 나온다. 주인공과 친구들이 소세키라는 사람에 대해서, '바보다', '이상한 사람이다'라고 막 비판한다ㅎㅎ


© soloeddi, 출처 Unsplash






일본의 현대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좀 부러웠던 건 일본의 빠른 현대화다. 1900년대 초반에 일본은 이만큼 근대화가 진행된 모습이 흥미로웠다. 우리나라는 쇄국정책으로 나라를 굳게 닫고 저항한 반면 일본은 (자의든 타의든) 활짝 열고 서양의 신문물을 빠른 속도로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축적한 힘으로 결국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에 온갖 못된 짓을 하기는 했지만 지금도 가끔 생각해 본다. 100여 년 전 그때에 우리도 문을 열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100년 전 조선과 일본의 엇갈린 선택 이후 근래까지도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일본을 이겨본 적이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반대로 그런 차이를 극복하고 요즘 일본을 많이 따라잡고 일부는 추월하기도 한 걸 보면 또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 회사에서 최재붕 교수님을 초청해  '포노 사피엔스'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100년 전 조선과 일본의 엇갈린 선택으로 지난 100년간 일본이 앞서 나갔다면, 지금 4차 산업혁명으로 또 한 번의 선택 기회가 왔다. 지금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뛰었다. 더구나 뉴스를 보면 일본은 아직도 팩스를 사용하고, 카드 사용률이 낮고, 정부나 기업의 전산화가 늦기로 유명하다. 아직도 미국과 함께 G2로서 세계의 경제를 주름잡던 시절을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일종의 토끼와 거북이 같은 느낌이랄까. 감히 낮잠을 자고 있는 듯하다!!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기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 tim_front, 출처 Unsplash




현대의 인간


잠깐 이야기가 곁길로 샜다. 

다시 소설로 돌아오자면, 이 책의 탁월한 점은 변화하는 시대의 인간상과 여기에 적응해 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심리가 너무 잘 묘사되어 있는 점이다. 현대화, 산업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낮아지고, 실업가나 투자 등에 관심과 존경이 넘어가는 시대의 모습이다. 


지금 사람은 어떻게 하면 내 이익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 자나 깨나 생각하니까 자연히 탐정이나 도둑처럼 자각심이 강해지지. 종일 두리번두리번, 살금살금,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잠시도 안심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 사람들의 마음이야. 문명의 저주야. 궁지에 빠진 꼴이지. 



100년도 더 전에, 이렇게 오늘날 현대인의 모습을 실감 나게 묘사했다. 인간에 대한 깊은 관찰과 애정이 있는 것 같다. 

이야기 자체로도 무척 재미있고 유머가 넘친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친구인 '메이테이'의 팬이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기는 하지만 매사에 낙천적이고 장난기가 넘치고 호탕한 모습이 매력적이다. 딱 친구로 사귀면 재미있는 유형의 사람이다. (반대로 이런 사람 눈밖에 나면 항상 골탕 먹고, 아주 피곤할 스타일이다 ㅎㅎ) 


© ATMAN, 출처 Pixabay



이 모든 이야기가 고양이의 관찰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이 소설의 백미다. 마지막에 맥주 마신 고양이의 최후는 정말 충격적인 마무리라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오랜만에 재미도 있고 신선한 소설이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시도해 보지 않은 장르의 책들을 건드려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결론은 편견을 갖지 말고,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책책책 책을 들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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