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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May 17. 2016

누군가의 딸에서, 누군가의 엄마로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서

외숙모는 참 당찼다, 처음 봤을 때부터.

얇게 찢어진 눈꼬리, 호리호리한 몸, 그리고 우리 삼촌을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외숙모는 삼촌을 엄청 쫓아다녔다고 했다. 그 시절, 중학생이었던 내게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신기하고 이상했다. 어쩜 저런 말을, 아무런 부끄럼 없이 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처음엔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남편의 누나인 우리 엄마한테도 서스름없이 대하는 그 모습이, 그때는 건방져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외숙모는 둘째 아이를 낳은 후 통통해졌다.

그래서일까. 약간은 부드러워진 외모 덕분에(!) 새삼 친해졌다. 귀여운 친척 동생들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 무렵 장기 해외 파견으로 오래 집을 비운 삼촌 때문에 엄마와 자주 외숙모를 만나러 가곤 했다. 갑작스러운 삼촌의 파견 근무에 외숙모는 아빠 몫까지 하며 아이들을 잘 키웠다. 유난히 나를 잘 따르던 세림이와 예림이는 어느덧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


외숙모는 누군가의 딸에서,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다.

외숙모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셨다. 남편 없이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아픈 엄마를 살뜰히 보살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외숙모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오래 병상에 계셨기에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서둘러 채비를 하고 장례식장에 갔다. 기도를 하고 상주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곁으로 다가온 외숙모를 힘껏 안았다. 늘 당차고 씩씩했던 외숙모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 순간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의 눈을 피했다. 나는 서둘러 미리 와 계시던 부모님 곁에 가 앉았다. 세림이는 상을 차려주고 곁에 와 앉았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외숙모가 돌아오자 세림이는 말했다.


- 엄마, 나 물


다 큰 아이의 말이었지만 외숙모는 벌떡 일어나 물을 가지러 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 슬픈 상황에서도 딸의 필요를 채워주는 외숙모의 모습을 보았다. 누군가의 딸에서, 누군가의 엄마가 된 그녀의 모습. 여러 번 눈이 마주칠 때마다 눈물이 차오르던 외숙모는 결코 울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이 상황을 보내고 있었다. 


똑같은 상황을 걸어가게 되지만, 곁에 있을 때는 진정 깨달을 수 없는 엄마의 존재.

누군가의 딸이었으나,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을 때 비로소 느끼게 되는 엄마의 마음.

나는 곁에 있던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도, 현재의 엄마의 고마움을 다 알 수 없을 거라는

그 막연한 불안함에 더욱더 꽉, 엄마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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