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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May 05. 2016

그러면 좀 어때

나 스스로를 인정하기

나는 오늘, 서두르다 넘어졌다. 비닐봉지에 있던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져버렸다. 잠시 주저앉아 다친 곳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손으로 땅을 디디지 않아 발목이 더 많이 쓸렸다. 쓰라렸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그리고 봉투 밖으로 쏟아져 데구루루 길 아래로 굴러간 물건들을 하나씩 주었다. 언젠가부터 '트러블 메이커'라는 별명이 생겼고 그에 걸맞게 자주 쏟고, 넘어지곤 했다. 


J.A. 언니는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았다. 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었다. 함께 식사를 하던 중이면 한 번씩 물을 쏟거나, 음식을 옷에 잔뜩 묻히곤 했다. 그럴 때면 "역시, 오늘도 J.A. 언니!" 하며 다들 놀려댔다. 어린 동생이라 언니를 심하게 놀리진 않았지만 늘 마음속으로 '조심 좀 하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요즘 내게서 J.A. 언니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나는 조심성이 없는 사람인 걸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황당하게도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조심성 없으면 어때.


예전에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실수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아서 쉽게 무언가 시작하지도 못했다. 나는 여전히 실수하는 것이 싫고, 무언가 빨리 실행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도 이전보다 나는 조금 편안해진 것 같다. 누군가 내게 '트러블 메이커'라고 말해도 그것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나의 빈틈 또한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오늘, 서두르다 넘어졌다. 창피해서 벌떡 일어났던 중학생 때와는 달리 잠시 주저앉은 상태로 나에게 물었다. '괜찮아? 많이 다치진 않았지? 그래, 가끔 넘어질 수도 있어. 일어날 수 있지?' 넘어진 곳이 아팠지만 괜찮았다. 그리고 또 다음에 넘어져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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