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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Aug 07. 2022

살아'갈' 때야 비로소

작별인사, 김영하

그때마다 이야기는 직박구리가 죽어 있던 그날 아침,

모든 것이 흔들리던 순간에서 시작됐다.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시기였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랐던 건 아니지만,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해지다 보니 엉뚱한 곳에서 자꾸 나쁜 마음이 픽픽 새어 나왔다. 하루를 돌아보며 일기를 쓰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달리는 것도 전부 잊어버렸다. 나의 이야기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책이 출간된 5월, 서점에 가서 '작별인사'를 샀다. 빨리 읽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러했지만 책에 대해 뭔가를 남길 수가 없었다. '사유'가 멈춘 것이다. 철이, 선이, 민이의 이야기가 그냥 남의 이야기처럼 저편에 있었다. 누군가는 마지막 장을 덮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데 왜 나는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을까. 그런 생각만 들었다.


한참 동안 다른 책을 읽지도 못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서야 내가 지쳐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지친 이유도. 어느새 나의 이야기는 멈춰서 있던 것이다. 누군가의 '엄마'인 삶만 살아가려고 했던 것이다. 의식도, 의미도 없이 살아진다. 그렇게도 사람은 살 수 있다.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과 살아'진다'는 것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살아'갈' 때, 비로소 이야기는 흘러간다.


'작별인사'를 하지 않는 한, 이야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져야 한다. 나의 이야기뿐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는 존재 그 자체로서 흘러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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