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현 Jul 14. 2016

등을 밀어준다는 것

목욕에 대한 추억

토요일 아침, 오랜만에 엄마와 목욕탕에 갔다. 옷가지들을 사물함에 넣고 목욕탕 입구로 들어서면 반드시, 안경을 벗어야 한다. 뿌옇게 흐려진 안경을 물로 한 번 헹구고 나서야 목욕탕 안이 제대로 보였다. 여름이라 그런지 한산해 쉽게 자리를 잡았다. 목욕의자 2개와 세숫대야 2개, 작은 대야 3개를 자리에 가져왔다. 공식처럼 챙기게 되는 도구들. 그럼 엄마는 비누거품을 내어 내가 챙겨 온 도구들을 깨끗이 씻어주신다. 샤워를 하고 욕탕에 들어갔다.


- 앗, 뜨거워.

- 그러게. 엄청 뜨겁네.


어릴 적, 엄마는 뜨거운 욕탕에 쉽게 쉽게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는데. 엄마에게도 이 곳은 뜨거웠을 거라는 걸 어른이 되고 나서야 새삼 깨달았다. 조금 답답했는지 엄마는 먼저 자리로 돌아갔다. 어린아이처럼 나도 엄마를 따라 자리로 돌아갔다. 목욕탕에서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나의 신혼집에 관하여, 요즘 우리 회사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이번 여름휴가는 어디로 갈 것인지, 엄마를 힘들게 하는 직장 동료(근속 20년. 늘 대단하게 생각한다.)에 대하여, 시부모님의 성화에 고생하는 내 친구에 대하여. 이야기는 두서없이 탁구공처럼 여기로 튀었다가 저기로 튀었다. 매일 샤워하는 여름이라 때가 없을 거라던 엄마의 말과는 달리 불려진 때는 잘 밀려 나갔다. 엄청난 이야기를 털어내서인지, 아님 때를 털어내서인지 알 수 없지만 몸이 많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잠시 후 엄마는 내 등 뒤로 다가왔다. 늘 순서는 나 - 엄마 차례였다. 엄마는 항상 내 몸을 살펴주었다. 그것은 깨끗하게 몸을 씻었는지를 확인하는 동시에 내가 얼마나 자랐는지는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나는 어느새 엄마의 손이 필요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의 목욕시간은 어릴 적의 절반도 못 미치게 되었다. 


- 엄마, 예전에는 2시간이 넘도록 목욕을 했던 거 같은데. 

- 그랬지. 너희(언니와 나)는 제대로 못 미니까. 엄마가 다 다시 밀어줬잖아. 엄청 힘들었어.


그랬다.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나는 좀처럼 엄마처럼  잘 하지 못했다. 몇 분을 밀고 밀어도 뭔가 찝찝한 기분. 그런데 엄마의 손길이 닿으면 깨끗해졌다. 목도, 손도, 발도 반질반질해졌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차피 엄마가 해줄 거니까, 하면서.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도 못하고. 그리고 여전히 엄마는 내 등을 밀어주셨다. 꼼꼼하지만 아프지 않게. 이제는 내 차례였다. 엄마의 등 뒤로 갔다. 엄마의 등은 생각보다 좁고 하얗고 말랐다. 나는 조심스레 엄마의 등을 밀기 시작했다. 참 가녀린 여자의 등을.


목욕을 마치고 탈의실에 가서 얼굴과 몸에 로션을 발랐다. 새빨갛게 물든 볼이 귀여웠다. 엄마는 무엇을 마시자고 했다. 그렇게 사달라고 해도 사주지 않았던 내 어릴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엄마와 음료수를 하나씩 마시고 목욕탕을 나왔다. 황당하게도 목욕탕이 훨씬 시원했다며. 우리는 젠 걸음으로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결혼하기 전까지 엄마랑 자주 목욕탕에 와야지, 하고.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운 나의 라디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