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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종만 Nov 21. 2020

겨울이 즐거운 눈의 나라로의 여정

한국의 알프스, 선자령

  유럽의 지붕 알프스는 희고 높은 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한국인이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 중의 하나다. 하지만 워낙 멀고 경비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요즘에는 코로나 19 때문에 알프스 여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 가지 위안은 국내에도 영남알프스니 고성 알프스리조트니 하여, 알프스라는 이름이 들어간 여행지가 제법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유럽의 알프스만큼 높지는 않지만 풍광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 한국의 알프스, 선자령이 압권이다.

바람과 눈의 능선, 선자령

  국토의 등줄기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중심 선자령은 바람의 능선이다. 대관령 옛길 한가운데 성업 중인 휴게소 건물을 지나 양 떼 목장과 기상대 방향으로 갈리는 삼거리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오르면 선자령 가는 등산로 초입이다. 흰 눈 사이로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나무 사이를 지나 능선에 올라서자마자 동해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뺨을 때린다. 얼마나 바람이 센지 금세 뺨이 얼얼해진다. 능선에 서있는 나뭇가지들이 하나 같이 서쪽으로만 뻗어있다. 


  30분 정도 바람과 싸우면서 완만한 능선을 걷다 보면 이국적인 자태를 뽐내는 풍력발전기가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낸다. 그야말로 바람의 땅이요 바람의 언덕이다. 거센 바람이 능선에 내려 쌓이는 눈도 모두 날려버릴 기세지만, 얼마나 많은 눈이 내리는지 선자령 능선은 겨울 내내 눈길이다. 동해에서 내륙으로 향하던 눈구름이 국토의 등줄기를 가르는 선자령에 부닥쳐 모두 눈이 되어 쌓이느라 초겨울부터 초봄까지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렇게 거센 칼바람도 어쩌지 못했던 눈길이 등산객들에겐 동심을 자극하는 별천지로 다가선다. 제대로 눈 구경 한 번 하기 어려운 도시에서 찾아온 여행객들에게 선자령 눈길에서 다시 어린이가 된다. 1미터 이상 쌓인 눈밭에 스스로 넘어지면서 영화 러브스토리의 주인공 흉내를 내기도 하고, 솜사탕 같은 눈을 뭉쳐 맛을 보는 여행객도 있다. 주먹만 하게 눈을 뭉쳐 눈싸움을 하는 중장년층 여행객도 드물지 않다.

  강원도 평창군과 강릉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선자령 정상은 해발 1,157미터로 제법 높은 산이지만 산행 들머리인 대관령 휴게소가 800미터쯤 되어 실제 고도차는 얼마 되지 않는다. 덕분에 산책하듯 걸어도 2시간이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정상에 도착하면 한반도 지도가 그려진 백두대간 표지석이 먼저 반긴다. 아울러 그림처럼 펼쳐진 설경이 눈을 찌른다. 자연의 극치에서 원초적 자아와 만난 것 같은 희열이 가슴을 친다. 


흰 눈이 연출하는 겨울의 향연

  선자령 등산은 오르막이 완만하고 길도 잘 닦여있어 한 겨울에도 크게 위험하진 않지만 바람과 추위에 대한 대비는 단단히 해야 한다. 영하 10여 도는 보통이고 바람이 많을 경우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기도 한다. 전문가용 등산복을 준비하는 게 좋고 눈길에 빠질 것을 대비하여 스패치나 장갑, 목도리, 모자, 여벌 옷까지 방한장구를 모두 구비해 가야 한다. 자칫 방심할 경우 동상에 걸릴 수도 있고 저체온증으로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바람 피할 곳도 마땅치 않기 때문에 추운 날 장비를 갖추지 못한 등산객이나 노약자는 굳이 선자령 정상까지 다녀오지 않아도 된다. 대관령 옛길 주변에는 참으로 볼만한 여행지가 많기 때문이다. 첫손가락에 꼽히는 곳이 양 떼 목장이다. 선자령 등산로 반대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서면 양 떼 목장이 나타난다. 한국의 알프스라 불릴 만큼 풍경이 멋들어지고 눈 쌓인 구릉과 나무로 만들어 세운 건초창고 등이 이국적인 볼거리를 연출한다.  

  낮은 구릉이 축사를 둘러싼 분지 모양을 하고 있는 양 떼 목장의 20만 평방미터가 넘는 광활한 대지가 온통 흰 눈에 쌓여 있는 모습은 여행객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산책로를 따라 구릉을 오르내리는 사이 추위는 사라지고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 맺힌다. 눈과 추위 때문에 축사에 갇힌 양 떼들을 대신하여 눈 쌓인 구릉은 여행객들의 차지가 된다. 마음껏 뒹굴고 눈싸움을 하고 미끄럼을 지치는 여행객들의 투명한 웃음소리가 싱그럽다.

  1988년 개장한 이래 이국적이면서도 향기로운 풍광으로 인해 양 떼 목장은 가을동화나 화성으로 간 사나이 등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 장소로도 많이 활용되었다. 이후 일반 여행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해마다 여행객들이 늘어나더니 최근에는 대관령 일대에서 가장 가볼 만한 여행지로 손꼽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해, 사계절 내내 주말이 되면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줄지어 이곳을 찾는다. 


도심의 때를 벗고 자연과 하나 되기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은 눈 쌓인 구릉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일이다. 학원을 전전하거나 컴퓨터 게임에 빠져 밖에서 뛰어놀 일이 거의 없는 도시 아이들은 솜이불처럼 포근한 눈밭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어논다. 그렇게 땀나게 뛰어놀면서 도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것이다. 또 여행객들을 위해 축사에 따로 남겨둔 메리노 양에게 건초를 먹이는 체험과 양을 직접 만져보는 일도 아이들에겐 소중한 추억이 된다.

  멋진 추억을 한 장의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목장을 찾는 이들도 많다.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이 일반화된 이후 여행객들 손에는 크고 작은 카메라가 하나씩은 들려져 있는데, 눈 쌓인 구릉과 푸른 소나무, 이국적인 풍경을 더하는 메리노 양, 눈밭에서 뒹구는 아이들처럼 촬영 소재도 풍성해 연실 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이다. 

  양 떼 목장과 용평리조트 등을 품고 있는 횡계는 황태덕장으로 유명한 곳인데, 황태덕장 한 곳에서 생산되는 황태가 1년에 1백만 마리 이상 되며, 인근 20여 개 덕장에서 매년 수천만 마리의 황태가 생산되어 전국에 공급되고 있다고 한다. 횡계에서는 매년 겨울 눈꽃축제를 열고 있는데, 눈으로 만든 조각상이 다채로워 한번 들러볼 만하다. 공식적인 축제기간 이후에도 눈 조각상은 그대로 남겨두기 때문에 눈이 녹기 전까지는 여유롭게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밖에 인근 차항 1리 수레마을에서는 황태덕장을 구경하고 마른 황태 두드리기, 전통 황태구이 체험 등을 할 수 있고 차항 2리에서는 눈 위에서의 승마체험과 개썰매 체험 등을 즐길 수 있다. 


여행 Tip

  선자령을 찾으려면 영동고속도로 횡계 I.C를 빠져나가는 게 가장 빠르다.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오면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삼거리에서 우회전한 후 직진하다가 이정표를 따라 대관령 옛길로 들어서면 된다. 대관령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선자령 등산로를 따라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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