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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종만 Oct 30. 2024

끝이 시작이다

함종만 등산 에세이 -프롤로그

하필이면 다행이다          

아직 젊어 보인다지만 우리 나이로 환갑을 넘긴 지 오래다. 살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을 건 확실하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 해도. 그러니 끝이 멀지 않았다. 마침내 한 세상 마치고 다들 떠난 그곳으로 가야 한다. 정말 그럴까? 삶에 대한 애착을 생각하면 안 그랬으면 싶지만, 우리네 삶에 예외는 없으니 정말 그럴 것이다. 끝은 올 것이고 때가 되면 떠나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하필이면’을 자주 떠올렸다. 하필이면 이 땅에 태어났을까? 프랑스나 독일 아니 미국 같은 나라가 아니고 하필이면 가난뱅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났을까?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나,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운명이라지만, 그게 하필 왜 나란 말인가.

하필이면 이렇게 생겨 먹게 태어났을까도 불만이었다. 꼬마 신랑 김정훈은 몰라도 얄개 이승현처럼 태어나지 못하고, 길가 돌멩이처럼 흔한 얼굴로 태어났는지. 그렇게 잘 나가는 내 또래 아역배우를 보면서 부모님 원망도 자주 했다. 생각할수록 불효막심한 일이었으나, 그때는 그랬다. 조금이라도 부자였으면 했고, 가능하면 잘나 보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어디 내 의지로 되는 일인가?


설악산 마등령 오르는 길에 만난 반가운 일출


그래서 우울했다. 잘난 얼굴도 아니고 머리가 비상하지도 않고, 그림 솜씨도 노래 솜씨도 그저 그렇고, 운동은 젬병 수준이고. 한 가지 재주는 있었다. 시를 짓고 글을 쓰는 재주가 또래보다 조금 나았다. 백일장에 나가 상도 제법 받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대학교 문과대학 학장님 명의의 최고상을 받기도 했다. 공대에 입학하면서 모두 쓸모없는 일이 되었다 싶었다. 아니었다.

신입생 시절 문무대 입소를 마치고 나온 지 일주일쯤 지났을까 갑자기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교지에 응모했던 소설이 당선작 없는 가작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듬해 서울의 봄이 한창 일 땐 대학신문 문학상에 응모한 소설이 당선작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그냥 재주 수준이었던 글쓰기가 밥벌이에 대한 가능성으로 바뀌었다. 가고 싶지 않았던 공과대학에 입학한 나로서는 다행이지 싶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었다. 그 가능성을 밑천으로 마당극 대본을 쓰고 시국 선언문을 작성하고 학보에 비평문을 연재하고, 주변에서 잘 쓴다는 칭찬도 받았으나, 그것은 강제 징집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군대에서도 글쓰기는 이어졌다. 주로 반성문이었으나 가끔 전우신문에 애국적인 내용의 수필 따위도 투고하곤 했다. 중대장님이나 대대장님 지시로.

제대를 앞두고 녹화사업을 받았을 때는 8절지 갱지 50장 분량의 반성문도 썼다. 그것도 양면 빽빽하게. 하필이면 약간의 글재주는 있어서, 이런 생고생이라니. 그렇게 ‘하필이면’의 연속이었다.


등산객을 반기는 아름답고 그윽한 단풍


다시 시작하기 위해

한참 지나 2000년대 들어서 이런 ‘하필이면’이 ‘다행이다’로 바뀌었다. 하필이면 이 땅에 태어났냐고 원망했던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정말 다행이라 여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 지구촌 최빈국에서 중진국을 거쳐 선진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21세기 들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K-Pop, K-food 같은,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도 한몫했다.

알량한 글재주를 바탕으로 기업체 사보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되고 1990년에는 세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작가로 이름을 알리고 새로 생긴 문화부 이어령 장관 초대로 식사를 대접받기도 했다. 이후 편집회사에 들어갔다가 기업체 역사를 기술하는 프리랜서 사사 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하필이면 글재주냐가 그나마 글재주라도 있어 다행이다가 되었다. 인생 새옹지마랄까?

등산도 그랬다. 2000년 들어 불혹의 나이를 맞아 체력관리 차원에서 등산을 시작한 이후 매주 산을 찾았는데, 갈 때마다 ‘하필이면’이었다. 초창기 시절에는 북한산을 주로 찾았는데, 하필이면 이렇게 험한 코스를 택했다느니 하필이면 날씨가 안 좋은 날 산행에 나섰다느니, 투덜이가 따로 없었다. 


공룡능선에서 조망한 울산바위


그랬다가 산행을 마치고 벗들과 막걸리 한잔 마실 때면, ‘다행이다’를 반복했다. 오늘 비가 안 와서, 너무 덥지 않아서, 무사히 산행을 마쳐서, 참말 다행이다. 그러면서 체력도 좋아지고 산행 기술도 들어 처음에는 서울 근교 산들을 찾다가 점차 안내 산악회를 따라 전국의 명산을 찾게 되었다. 설악산 공룡능선, 지리산 종주 산행을 거쳐 마라톤에 입문, 춘천마라톤을 비롯해 여러 대회를 완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하필이면’과 ‘다행이다’의 반복이 인생 아닌가 싶었다. 산다는 건 변덕이나 핑계가 아니고 그저 변하는 상황에 따라 이어지는 무엇이 아닐까 싶은 것이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하필이면’과 ‘다행이다’의 반복이 인생이라면, 그렇다면 끝은 끝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적어도 산행에선 그랬다. 산행의 최종 목적지인 정상이 하산의 출발점이 되는 것처럼, 끝이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는 역설. 그렇다면 우리 삶의 끝도 시작일 수 있다는 희망. 종교든 신앙이든 미신이든 아니면 망상일지라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끝이 다시 시작이라니.

그래서 믿기로 했다. 천주교 신자라서만이 아니라, 살날보다 살아온 날이 훨씬 긴 인생 유경험자라서가 아니라, 희망을 희망하며 살기 원하는 나약한 인간으로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겁쟁이 인생에서, 납작 엎드려 비는 마음으로 믿음을 믿기로 했다. 끝은 없다고, 끝이 다시 시작이라고. 그래야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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