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핸드폰 알람을 끄고 몸이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난다. 특별한 단어가 있을지 모르겠다. 신체 알람? 자체 알람? 보통의 나는 전날 밤 12시 전에 잠이 들었다면 보통 7시쯤이면 저절로 깨는 편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12시 전에 잠을 자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는데. 아무튼 오늘 기상 시간은 7시 6분.
침대를 빠져나와 작업실에 와서 노트북을 깨우고 물을 마시기 위해서 주방으로 갔다.
주방 쪽에 있는 창으로 하늘이 보인다. 우리 집의 창문 다섯 개 중에 가장 동쪽으로 난 창문이다.
하늘은 대부분 푸른 회색이지만 핑크와 연보라 조각이 빼꼼 비춘다. 요즘 아침마다 날이 흐린 적이 많았기에 핑크와 연보라 빛이 유독 반갑다. 오늘 나의 기상과 일출 시간이 비슷했나 보다. (이 글을 쓰면서 궁금해서 찾아보니 2021년 5월 2일 비토리아 가스테이즈 일출은 7시 3분이다.)
물을 마시고 짧게 거실을 통과해서 작업실로 향한다. 거실에도 창이 있다. 소파에 기대어 창을 보면 하늘의 비율이 높지만, 걸으면서 보는 창 밖은 하늘보다는 나무가 훨씬 많다.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이긴 하지만 지난여름부터 가을, 겨울, 봄까지 지켜본 결과 그 초록에도 나름 차이가 있다. 요즘 집 앞 나무는 연초록이다. 다 자라서 이미 성장이 멈춘 듯한 나무도 시간의 흐름에 유연하게 변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주말이라 차 소리보다는 새소리가 더 많이 들리는 아침이다.
주방을 빠져나와 몇 걸음만 걸으면 작업실로 쓰는 작은 방이 있다. 침실로 쓰기에는 작지만 재미있는 나만의 방이다. 방의 재미는 형태에서 비롯된다. 이 방은 네모 반듯하지 않다. 변의 개수도 많고 그 길이도 다 달라 딱히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도형이다. 아주 애매한 변을 내 마음대로 덜어내고 본다면 약간 찌그러진 5각 도형. 다이아몬드 측면의 모양과 닮았달까? 굳이 다이아몬드라는 단어까지 쓰는 건 순전히 애정, 나만의 방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이 방에도 역시나 큰 창문이 있다. 주방 창문보다는 약간 남쪽으로 방향이 틀어져 있어서 덕분에 동쪽부터 남쪽 하늘까지 볼 수 있다. 창문으로 몸과 고개를 내밀면 서쪽 하늘까지도 볼 수 있지만 그건 위험하다. 창문 밖으로 몸을 내놓지 않아도 오롯이 창문이 담아주는 풍경을 본다. 아침에 작업실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으면 아까 주방 창문에서 눈인사를 나눈 빛이 금세 자라서 이 방까지 깊숙이 들어온다. 레이스 커튼의 그림자가 벽에 은은하게 그려진다. 해가 좋은 날에는 다이아몬드 방은 황금빛으로 하루 종일 눈부시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블라인드를 내려 빛나는 태양은 가려야 한다. 햇빛은 좋지만 그 빛에 눈이 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작년 7월까지 살았던 집은 서쪽으로 창이 있었다. 노을이 지는 시간이면 하늘을 보지 않아도 알아챌 수밖에 없다. 어김없이 쏟아지는 붉은 노을이 깊숙이 들어오니까, 몸이 저절로 창가로 기울어지는 것을 피할 재간이 없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하늘, 서쪽 창문은 황홀했다.
'노을이 빛나는 창'이 있는 집에서 살면서 새로 이사 갈 집을 보러 다녔다. '우리 집'은 그렇게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기가 어려웠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10 군데 집을 본 것 같다. 노을이 빛나는 창에서 살던 우리에게는 창의 위치와 방향 그리고 창에 담긴 풍경도 중요했다. 마지막으로 본 집이 바로 이 집이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함께 고른, '아침과 만나는 창'이 있는 집에서 10개월째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보내는 첫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