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ia O'keeffe 조지아 오키프

그저 보이는 것을 그렸을 뿐

by The Drawing Hand

정말 많고 많은 게 카페다. 특별히 말을 하지 않아도 핸드폰 앱을 이용해서 커피 주문을 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동네에 자주 가고 싶은 카페가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다. 서울의 우리 집 (친정이라고 하는 말은 아직 너무도 어색하다.) 근처에는 '달로 가는 사다리'라는 카페가 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있는 카페라, 오고 가며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고 궁금해졌다.

이름이 '달로 가는 사다리'라니, 뭔가 감성적인데?

이미 이 카페를 다녀오신 동네 지인의 추천으로 당시 진행하던 동네 그림 모임을 그곳에서 하기로 했다. '달로 가는 사다리'는 한참을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한 을지로의 힙한 카페와는 달리 소박한 매력이 있는 동네 카페였다. 사실 그래서 나는 더 좋았다. 그 첫 방문으로 나는 그 카페 이름이 어떤 그림 작품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고 그림에 관심이 많긴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건 모두가 다 아는 그 예술가와 작품만 알고 있을 뿐이다. 꾸준히 공부가 필요하지만 살다 보면 그것도 쉽지 않다. 그 후로도 몇 번 그 카페를 더 방문 하긴 했지만, 달을 향해 공중에 떠 있는 사다리의 이미지만 챙기고, 정작 그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이름은 또 잊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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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에서 제일 깬 개구리 마냥 조바심이 났다. 아무도 나에게 일을 주지 않으니 내가 일을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나는 몇 주전부터 예술가의 초상화 시리즈를 시작했다. 물론, 평소 동경하고 좋아하던 예술가만 잔뜩 그려도 전혀 상관없을 개인 프로젝트다. 그렇지만, 이건 나의 '연구'니까, 그동안 잘 몰랐던 예술가들을 찾아서 나의 연구이자 연습 과정에 적극적으로 포함하기로 했다. 그 연구 대상이 될 예술가를 찾기 위해서 예술 관련 사이트를 기웃거리다 보니 자꾸 '조지아 오키프'라는 이름이 나온다. 꼭 알아야 할 근대 예술의 유명한 작가라는데, 나만 잘 몰랐던 것 같다. 인터넷에서 찾은 엄청 비싸게 팔렸다는 커다란 꽃 그림에는 특별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무리 커다란 그림이라고 해도 모니터에 띄워지면 귀여운 이모티콘 정도의 사이즈로 보일 뿐이다. 음, 어쩐다 작업에 마음을 줄 수 없는 작가를 유명하다는 이유로 그리고 싶지는 않다. 내가 그리는 예술가의 초상은 그저 유명한 예술가를 나열하는 작업이 아니다. 나름, 나도 '작가'로 개인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중이니까. 다시 다른 작가를 찾아야 할까 생각하던 중에 꽃 그림 사이로 상당히 다른 느낌, 하지만 익숙한 그림 하나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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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로 가는 사다리 Ladder to the Moon, 1958>

아, 이 그림이 조지아 오키프 그림이었구나. 우리 구면이네요.


그렇게, <닮지 않았지만, 왠지 나 같네> 세 번째 예술가의 초상은 '조지아 오키프'가 주인공이 되었다.

전혀 아는 게 없다고 생각했던 작가의 작품 중에서 내가 아는 그림이 나오자 점차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저 인터넷에서 찾은 몇 장의 꽃 그림만 보고, 여성 작가가 그린 꽃 그림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던 내가 많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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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설명으로는 미국의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여류 화가.

충분하지 않다. 더 궁금하다. 한 장의 그림이 그 사람의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는 없지만, 그 초상이 좀 더 그 사람의 삶에 연결고리를 되어 줄 키워드가 필요하다. 작가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원래 미술 교사로 일하다가 화가가 되기 위해서 교직을 관뒀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진가와의 연애사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조지아를 예술계에 적극적으로 이끌어 줬고 나중에는 결혼까지 했다고 한다. (물론, 또 바람을 피우고 이혼을 하긴 했지만) 덕분에, 나름 성공적으로 예술계에 데뷔할 수는 있었지만, 당시 여성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과 좋지 않은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고 자신의 작업이 단순히 작가가 여자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를 당하기도 했단다. 이런 작가의 사생활이 참 흥미롭긴 하지만, 나는 그녀의 집이자 스튜디오에서 찍힌 노년의 작가 사진에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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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가 남긴 다수의 그림에 등장하는 뉴 멕시코. 황량한 사막과 산에 둘러 쌓여 있는 그곳에서 조지아는 마음의 평온을 느꼈다. 자주 오가면서 그 사막의 황량한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녀는 그곳에 자신이 원하던 공간을 마침내 마련했다. 원래 주인이 팔지 않으려는 오래된 단층 건물을 기다려서 결국 구입하고, 다 쓰러져 가는 그곳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바꿨다. 우리도 올여름과 가을 사이에는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녀의 공간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너무나도 그녀와 닮은 공간을 배경으로 작가의 모습과 목소리가 나오는 빛바랜 영상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녀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젊은 시절의 누드 사진과 교차되면서 자신의 길을 오랫동안 걸어온 시간이 보이는 듯하다. 실제, 조지아는 97세까지 그림을 그렸고 시력이 좋지 않아 져 그림 그리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어지자 자신이 사랑하던 작업실이자 집을 떠나서 가족과 함께 100세까지 살다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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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d to create an equivalent
for what I felt about I was looking at - not copy it.
나는 그저 내가 본 것에 대한 느낌을 그릴뿐이다.


여류 작가가 아닌 그저 작가로 불리기를 원했던 사람.

자신만의 것을 찾기 위해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살기 위해서 평생을 노력했던 사람.

가장 자신다워질 수 있는 곳에서, 주변의 자연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그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언어로 끊임없이 그린 작가.

그런 작가를 오해하고 잘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니...

그래서 앞으로 오래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그린 조지아 오키프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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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임 -

1. 조지아 오키프는 검은색과 하얀색, 최소한의 간결한 옷만 입으면서 패션으로도 자신의 스타일을 표현하고자 했던 예술가였다. 그녀의 삶은 그녀의 작품 그 자체라는 말이 어울린다.


2. <달로 가는 사다리> 그림에 등장하는 사다리는 뉴멕시코 집에 있던 실제 사다리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본 것을 충실하게 그리는 화가였던 조지아는 그녀가 오랫동안 관찰했던 그 달을 그렸을 것이다. 어젯밤 침실 창문에서 본 눈부신 달이 기억난다. 오늘의 달은 어떤 모습으로 빛날까? 그러고 보니 글을 쓰는 오늘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핸드폰 배경화면 : 조지아 오키프의 초상화 배경 이미지를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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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영상으로 그림 그리는 과정을 보실 수 있어요 :)

https://youtu.be/yizQFAFOpH0


더드로잉핸드 The Drawing Hand

그림 그리는 삶.

현재 스페인에서 느릿느릿, 다시 고민 중.

인스타그램 : http://instagram.com/jejeviva

유튜브 : http://youtube.com/thedrawing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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