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그리움을 그리다
샤갈의 이름을 들으면 그 그림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아주 오래전 어느 날,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오랜만에 친구와 전시를 보러 갔다. 그 친구와 나, 우리는 초등학교 3학년 같은 반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많은 같은 반 아이들 중에서 왜 둘이 친구가 되었는지는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우리는 처음부터 친구였다. 서로의 집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어야 베프인 시절, 서로의 집 전화번호도 매우 비슷했는데(당연히 지금도 외울 수 있다.) 그 사실마저 우리는 친구가 될 운명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친구가 된 우리는 오랜 시절 많은 것을 함께 했다. 그날도 그런 평범한 날 중에 하루였다. 그림을 좋아하는 우리는 오랜만에 전시를 보기로 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우리가 좋아하는 곳 중에 하나였다. 잘 정리된 정원 사이에 만들어진 짧은 길을 따라서 미술관 입구까지 가는 그 기분이 참 좋다.
솔직히 미술관에서 어떤 그림을 봤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날 초록색이 참 싱그럽게 느껴지는 초여름이었던 것 같다. 전시를 다 보고 나왔는데 미술관 앞에서 청계천 복원사업을 하면서 시민참여 아트월을 만들기에 참여하라는 부스를 보았다. 준비된 타일에 그림을 그리면 그 타일을 모아서 아트월을 만들 거라는 설명을 들었다. 나와 내 친구는 오늘을 기념할 겸 한 장의 타일에 함께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 날 본 전시에서 인상 깊었던 그림을 골랐다. 정확한 작품명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하늘을 나르고 있는 연인이 등장하는 그림을 흉내 내서 그렸다. 언젠가 아트월이 완성되면 우리 그림을 찾아보자고 다짐했지만,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그 뒤로 찾지는 않았다. 그 날 우리가 함께 본 전시는 샤갈의 전시였다. 도대체 언제인가 싶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는데, 2004년이다. 16년이나 지난 지금 그림 타일의 행방은 알 수 없지만, 그림을 그리던 시간은 또렷이 기억난다.
매주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이름으로 개인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프로젝트라고 하니 거창하지만, 그저 좋아하는 예술가 혹은 알고 싶었던 예술가를 찾아서 그들의 삶과 작품에 대해서 공부하는 시간이다. 공부한 결과는 한 장의 그림으로 남기고, 그 과정은 영상으로 만들고, 그리고 그 속에서 떠오른 단어들은 이 곳에서 짧은 글이 된다. 그저 스터디라는 이름으로 그리는 그림 한 장이지만, 다양한 각도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그 결과도 다양한 형태로 담긴다.
샤갈이라는 이름도 익숙하고 그의 작품도 꽤 많이 알고 있는 편이지만, 삶이나 그림의 내용에 대해서 자세히 들여다보기는 처음이었다. 워낙 몽상가 같은 느낌이 강한 회화작품이라 너무나도 내 취향이지만 그전에는 화려한 색감과 판타지 같은 화면에만 정신이 팔렸나 보다. 우연히 찾은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노년의 샤갈을 만났다. 불어로 이야기하는 그의 말을 직접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옆에서 영어로 통역해주는 샤갈의 부인, 발렌티나(Valentina Brodsky)가 있었다. 전문 통역사가 아니라 그의 삶과 작품을 함께 한 부인의 목소리와 겹쳐서 그의 작품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마냥 동화처럼 꿈처럼 보이는 샤갈의 그림 속에는 그가 평생을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샤갈은 사랑과 그리움의 대상 그리고 그의 감정을 함께 그림으로 그렸다. 모든 것은 사실에 기반한 실제의 것이었지만, 결과로 나타난 그림은 그저 현실성 없는 꿈속의 한 장면 같이 보인다. 어쩌면 실제 샤갈이 꾼 꿈의 한 장면이었을지도 모른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벨라를 그리워하다가 꿈에서 만나 격한 포옹을 나누고 손을 맞잡고 그리운 고향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이었을까?
In the arts, as in life,
everything is possible provided it is based on love.
Marc Chagall
그림 그리기 수업을 하다 보면 그냥 따라 그리기는 익숙한데, 실제로 내가 그리고 싶을 때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보통은 쉽게 좋아하는 것을 그리라고 답을 하는데, 앞으로는 샤갈에게 배운 것처럼 사랑하는 것을 그리자고 말해야겠다. 사랑이라는 말이 어쩐지 쑥스럽다. 하지만, 내 그림에 담아낼 대상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생각하여 수많은 연습을 하고, 여러 장의 완성에 가까운 무엇인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대상에 대한 사랑이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정말 내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면, 그것이 내 그림이라고 믿는다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그리기 시작해야겠다. 이미 내게는 사랑과 그리움의 대상이 너무나도 많다.
오늘은 샤갈 덕분에 16년 전 전시를 보러 갔던 그 날과, 그 친구가 그립다.
*유튜브에서 영상으로 그림 그리는 과정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이패드 + 프로크리에이트)
<핸드폰 배경화면 : 파일을 다운받으셔서 사용하세요 :) >
더드로잉핸드 The Drawing Hand
그림 그리는 삶.
현재 스페인에서 느릿느릿 다시 새로운 일상을 만드는 중.
인스타그램 : http://instagram.com/thedrawinghand.viva
유튜브 : http://youtube.com/thedrawinghand
참고 : 샤갈에 관한 다큐멘터리 https://youtu.be/dzuhgF9EqD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