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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Jun 29. 2017

애플의 프라이드

애플은 왜 무지갯빛 밴드를 만들었을까

얼마 전, 미국으로 출장갔을 때의 일이다. WWDC 2017 키노트가 끝난 뒤, 핸즈온 섹션에서 새로운 아이패드 프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이패드 프로도 좋았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좀 더 알록달록한 물건이었다. 몇몇 애플 스텝들의 손목에 감겨있는 무지갯빛 애플 워치 밴드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이다.


[좌측에 씬스틸러]


사족이지만 애플 스텝들은 정말 쾌활했다. 미국인 특유의 붙임성인지 눈만 마주쳐도 마구마구 반갑게 인사하고, 마구마구 칭찬해준다. 훤칠한 키의 스텝중 하나가 인사말을 건네며 “오늘 네 의상 참 좋다”라고 말해주더라. 영어가 짧은 나는 “새로 산 옷인데 엄청 불편하지만 디자인은 예쁘지? 정말 고마워.”라고 대답하는 대신 “땡큐…”라며 얼굴을 붉혔다. 그래도 물어볼 건 물어 봐야지. 더듬 거리며 물어봤다. “그 워치 밴드는 뭐야?” 그가 자부심이 묻어나는 미소로 답했다. “이건 프라이드(Pride)야.”



그래. 내가 상상한 그 의미가 맞았다.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그 컬러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세상에 있음을 상징하는 밴드였다. 이미 새로 나온 우븐 나일론 밴드를 차고 있었지만, 프라이드도 갖고 싶었다. 당장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내가 이 브랜드를 좋아하는 이유가 늘어가고 있었다.



무지개가 LGBT를 비롯한 다양성의 상징이 된 건 꽤 오래된 일이다. 1978년, 미국의 성 소수자 인권운동가이자 화가였던 길버트 베이커가 무지개 깃발을 만들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초창기에는 무려 8가지 색을 사용했다더라. 온갖 색이 다 담겨있는 무지개 색깔로 성적 다양성을 대변하려 한 만큼, 분홍색까지 포함한 화려한 깃발이었다. 지금은 6색 무지개 깃발을 사용한다. 무지개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그 존재감 만큼이나 컬러풀한 이야기를 품게 됐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한 가지 컬러로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인생을 대변하기 시작했으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xdjAX5A-6qE


지난해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LGBT를 위한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열렸다. 애플은 이때 무지개 컬러의 우븐 나일론 밴드를 제작해 직원들에게 선물했다. 일종의 사내 캠페인이자 한정판 아이템이었던 셈이다.



1년이 지나고 드디어 이 밴드가 프라이드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출시됐다. 의미도 좋지만 난 원래 무지개를 좋아한다. 예쁘니까. 우븐 나일론은 보기 보다 섬세한 소재다. 500가닥 이상의 실을 일정한 방식으로 엮어 컬러풀한 패턴을 완성하는 태피스트리 직물이다. 가볍고 견고하며, 다른 워치 밴드에 비해 가격도 합리적인 편.



내 손목에도 무지개가 떴다. 세상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고, 우리는 때로 서로의 컬러가 무엇인지 짐작하지 못한다. 항상 한 가지 컬러만 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모두 무지갯빛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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