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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Feb 19. 2018

나 술 마실 건데 나눠먹을 사람?

쉽게 꺼내든 포틀랜드에서 온 헤페

“리뷰할 술은 어떤 기준으로 고르세요?” 아직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질문을 던졌던 사람은 없었지만 충분히 물어볼 수 있다.


“제 ‘알콜 수첩’에는 벌써 2018년 S/S 시즌 알코올 리뷰가 줄을 서 있습니다. 가끔 세간을 떠들석하게 만드는 술이 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어지간해서는 이 순서를 어기는 일은 없습니다. 전 제 나름대로 시즌마다 어울리는 술이 있다고 믿거든요.”


물론 거짓말이다. 나도 뭔가 멋지게 말할만한 이유나 기준이 있었으면 참 좋겠지만, 대부분의 술 리뷰는 그냥 당기는 걸로 마셨다가 그것이 꽤 마음에 들거나 혹은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한다.



이런 나의 무계획적 음주 습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디에디트 사무실에서 가장 쉽게 마실 수 있는 맥주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화려한 향을 뽐내는 맥주를 좋아하는 나와 비교적 깔끔하거나 또는 달콤한 맛을 즐기는 나머지(에디터H와 G)가 비슷한 야근주를 고르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제아무리 자유로운 근무 환경을 자랑하는 디에디트라도 업무시간 내 음주를 위해서는 공범이 필요한 법.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디에디트 사무실엔 “나 술 마실 건데 나눠먹을 사람?” 이란 질문이 울려 퍼진다(아, 물론 이런 문장은 대부분 에디터H로 부터 나온다) 이럴 때 가장 쉽게 꺼내들 수 있는 맥주가 바로 화려한 우아함을 뽐내는 밀맥주 다른 말로 바이젠, 그중에서도 헤페바이젠이다.



오늘 마셔볼 맥주는 포틀랜드에서 온 헤페. 독일식 헤페바이젠을 미국식으로 재해석한 맥주다. 그런데 잠깐! 변종을 맛보기 전에 정통 헤페 바이젠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나.



바이젠 중 가장 인기가 좋은 헤페바이젠의 캐릭터는 꽤 명확하다. 양조시 최소 50% 이상의 밀을 더하고 양조 과정에서 따로 여과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독일어로 ‘효모’라는 뜻의 헤페(hefe)다. 헤페 바이젠에는 독특한 효모가 들어간다. 바나나와 정향의 풍미가 강한 이 신스틸러는 워낙 개성이 강해 등장하는 순간 홉의 씁쓸함이나 다른 맛과 향은 모두 시들어 버리고 만다. 헤페바이젠에서 이 헤페(효모)가 없으면, 밀이라는 뜻의 독일어 바이젠(weizen)만 남아 단지 심심한 밀맥주일뿐이다. 효모와 밀의 신묘한 조화로 몽글몽글한 거품, 탁하지만 황금빛, 쿰쿰하면서도 향기로운 맛 바나나, 빵 그리고 시트러스 아로마 맛의 헤페바이젠이 탄생한다.



그런데 약 30년 전, 미국 포틀랜드에 사는 위드머 형제가 전혀 다른 효모를 이용해 헤페바이젠을 만들었다. 전체를 지배하는 효모가 대체되니 눌려 있던 다른 것들의 풍미가 살아난다. 홉의 씁쓸함, 화사한 꽃향기 그리고 상큼한 시트러스 맛까지.


형제는 전혀 다른 효모를 넣은 완전히 새로운 헤페바이젠을 자랑하기 위해 이 맥주의 이름을 바로 ‘헤페(hefe효모)’라고 지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아메리칸 밀 맥주의 시작이다.



잔에 따르면 잘 구운 식빵처럼 몽글몽글 폭신한 거품이 차오른다.



씁쓸한 홉과 고소한 빵의 맛 느껴지다가 잔잔하게 깔리는 시트러스 혹은 허브류의 향이 흥미롭다. 탄산이 강하지도 않고, 고소한 맛이 나는 것이 전반적으로 맛 파동의 고저가 높지 않은 소박한 맛이다.



오늘의 안주는 딸기. 이것도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냉장고에 있는 딸기를 꺼냈을 뿐. 마침 또 내가 이맘때 나오는 겨울 딸기를 아주 좋아한다.



결론적으로 딸기는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딸기의 과육과 푹신한 맥주의 맛이 잘 어울린다. 깨물면 과육이 뭉개지면서 맥주의 맛을 화사하게 채워주더라고.



연휴 내내 집에만 있었는데, 창문으로 밀고 오는 햇살이 제법 따뜻해졌더라. 곧 봄이 올거다. 겨울이 끝나기 전에 딸기를 많이 먹어둬야지. 폭신한 맥주와 새콤달콤한 딸기의 맛은 정말 근사했어.



위드머 브라더스 헤페
Point
 호가든을 싫어하는 당신께
With  딸기
Nation  미국 오레곤 포틀랜드
Style – 아메리칸 밀맥주
ABV –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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