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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Apr 09. 2019

물만 넣으면 맛있는 커피가 된다.

소든의 소프트브루 제임스

사랑하는 여러분 안녕, 에디터M이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뜬금없는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3면이 창으로 둘러싸인 디에디트 사무실은 언제나 찬란하다. 특히 우리가 스튜디오로 꾸며둔 3평 남짓한 작은 공간은 오후 4시가 되면 비현실적으로 빛이 쏟아진다. 짙은 초록색 벽 위로 사무실 입주 선물로 받은 야자나무가 해를 받아 멋진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흰 테이블과 오렌지색 의자의 근사한 색조합은 정말이지 완벽하다! 이 아름다운 공간은 평소엔 영상 촬영 스튜디오, 손님이 왔을 땐 회의실로 쓰인다. 하지만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어느 오후 바쁜 하루 중 잠깐의 짬을 내 갖는 근사한 티타임이다.



디에디트가 커피를 섭취하는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어떨 땐 커피머신을 간단하게 인스턴트 커피를 즐길 때도 있다. 조금 여유가 있을 땐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는 에디터 기은이 핸드밀로 원두를 갈고 드리퍼로 향기로운 커피를 내려주기도 한다. 때문에 디에디트 사무실엔 원두가 떨어지는 날이 없다.



그런데 최근 아주 멋진 선물을 받았다. 물만 부어 맛있는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소든의 소프트브루 제임스다.



일단 너무 아름답다. 매끈하게 빠진 라인, 그냥 블랙이 아니라 먹색에 가까운 무광 컬러, 붉은빛이 도는 나무 뚜껑까지. 손에 쥐면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흙으로 빚어 구워낸 자기 소재이기 때문이다. 



블루보틀 에티오피아 싱글 오리진 원두도 함께 선물 받았다. 소든 팟에 참 잘 어울린다면서. 블루보틀도 좋지만, 무엇보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향기롭다. 바스락대는 종이봉투를 열자 향긋한 커피 향이 올라온다. 커피 향을 맡는 순간부터 잠겨있었던 것 같은 머리가 머리가 깨어나는 기분이다. 원두를 간다. 그라인딩 정도는 핸드드립용이 적당하다.



소든은 소프트브루 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한다. 소프트브루란 커피 테이스팅을 할때 많이 쓰이는 커핑에 기반해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을 말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프렌치 프레스 방식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주전자에 필터를 넣은 뒤, 커피를 한 잔 당 1스푼씩 넣어준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주전자에 붓는다.



커피가 잘 우러나올 수 있도록 스푼으로 10초 가량 천천히 한 방향으로 저어준다. 고운 크레마가 올라오고 좋은 커피 향이 주변 공기를 가득 채운다. 제 자리에 앉아서 일하고 있던 에디터H가 미어캣처럼 고개를 들어 코를 킁킁대기 시작한다.”커피 마셔? 나도” 언제나 평화로운 디에디트 사무실.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짧게는 4분 조금 더 진하게 마시고 싶다면 8분까지 시간을 주자. 놀랍도록 간단한 방식이다. 이렇게 쉽게 커피를 내릴 수 있다고? 물이 필터를 빠져나가는 걸 기다렸다가 그 앞에 지키고 앉아서 물을 끊임없이 부어줘야 하는 핸드 드립에 비하면야 쉽고 빠르고 간단하다.



이 방식의 가장 핵심은 바로 스테인리스 스틸 마이크로 필터다. 필터를 만져도 구멍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은 물론, 육안으로도 잘 확인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정말 구멍이 작다. 이 구멍은 딱 커피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입자만 통과시킨다. 조금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150마이크론 크기 이하의 입자만 통과시킨다고. 참고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브루잉 필터가 300마이크론 에스프레소가 200마이크론 정도라고.



순식간에 4분이 지나갔다. 컵에 커피를 따른다. 커피는 조금 탁하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말 미세한 커피 입자들이 검은 액체 안에 들어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 입자들은 커피 안에 섞여 커피의 바디감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향긋하고 맛있다는 것. 바디감도 산미도 커피의 맛과 향이 모두 살아있는 참 맛있는 커피다.



뜨거운 물이 아니라, 상온의 물을 붓고 스푼으로 젓는 과정을 거친 뒤 냉장고에 8시간 정도 두면 콜드브루도 가능하다고. 날이 조금 더 따듯해지면 이렇게도 즐겨봐야겠다.



다 마신 커피 컵에는 미세한 가루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디에디트 사무실엔 커피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요즘 차까지 섭렵하고 있는 물먹는 하마 에디터H가 상주하고 있다. 내친김에 차도 내려보기로 한다. 커피용 팟인 제임스말고 차를 내리는 용도인 제이콥도 같이 왔으니까.



상큼한 민트색의 제이콥은 조금 더 작다. 용량은 0.5L. 제임슨이 은은한 무광 소재였다면, 제이콥은 반짝이는 유광이다. 백자와 청자라고 하면 여러분에게 조금 더 쉽게 와닿을까. 작고 아담한 것이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미세스 팟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제이콥의 필터의 구멍은 커피를 위한 제임슨보다는 조금 더 큰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구멍이 슝슝 뚫려 있는 정도는 아니다. 차는 잎을 말려 잘게 쪼개는 방식이기 때문에 잎의 크기가 들쑥날쑥한 편이다. 때문에 차를 내리는 필터가 크면 꼭 작고 뾰족한 찻잎이 필터에 끼어 세척하기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그런데 소든의 필터는 구멍이 작아서 흐르는 물에 후루룩 헹구면 아주 쉽게 세척이 가능하더라. 아주 큰 장점이다.



오늘 오후의 티타임은 웨지우드의 얼그레이. 향긋한 베르가못의 향이 은은하게 나는 멋진 차다. 확실히 차는 커피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커피가 강하고 진해서 날 달리게 한다면, 차는 온화하고 따듯해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음 향긋해. 



얼마나 빵이 올라왔는지 혹은 누가 내렸는지를 따질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쉽게, 4분 만에 이렇게 즐거운 티타임을 가질 수 있다니. 기분 좋은 사치다. 주전자에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다. 한 잔 더 마시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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