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한 자리이던 시절, 장래희망을 적으라는 종이를 받으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빈 칸에 ‘소설가’나 ‘작가’라고 써 넣으면 벌써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미 노트로 서너 권이 넘는 장편 소설을 집필한 9세 소녀에게 꿈은 손에 닿을 듯이 가까워보였으니까. ‘대통령’이나 ‘과학자’같은 꿈을 이야기하는 반 아이들을 보면서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바보들, 그런 건 이뤄지지 않는다고.
숨쉬듯 자연스럽게 수많은 글을 쓰며 자랐다. PC 통신을 접한 중학생 시절엔 천리안 어느 게시판에 소설을 연재했던 적도 있다. 치열한 중2병의 기록이라 다시 찾아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아마 어른인 척 하거나, 사랑을 아는 척 하거나, 이별을 아는 척 했던 것 같다. 나이들며 분명히 배운 것이 있다면 모르는 감정에 대한 글을 쓰지 않는 일이다.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여러 작품을 썼다. 졸업할 때 마지막으로 썼던 소설 제목은 ‘한강을 사랑해’였다. 그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 해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J를 알았고, 전공과목에서는 모두 낙제점을 받았다. 매일 밤 사람을 죽이는 꿈을 꿨다. 그리고 한강에서는 사람이 죽었다.
나는 내 소설이 좋았다. 참 좋았다. 그걸 쓰는 내 모습도 좋았다. 하지만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인생에 정해진 식순이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천천히, 나는 소설가가 되지 않았다. 거기엔 큰 좌절이나 두드러지는 계기도 없었다. 그냥 어른이 되는 과정 그 어디에서 문득, 작가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상실감은 아주 긴 기간에 걸쳐 조금씩 나눠 느꼈다. 많이 아프지 않았다. 지나간 애인들이 “네가 글을 쓰며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할 때마다 가슴이 살짝 따끔거렸을 뿐이다
어쨌든 글을 쓰며 살았다. 이동통신사의 요금 정책에 대해 쓰고 통신망에 대해 쓰고 아이폰에 대해 쓰고 갤럭시에 대해 썼다. 작가는 아니었지만 기자 인생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원래 뭐든 열심히 하는 성격이니까.
아는 분도 있겠지만, 우리는 작년 5월 한 달을 포르투갈의 포르투라는 도시에서 지냈다. 그 곳으로 사무실을 옮겨서 한 달 동안 먹고 자고 살고 일했다. 특별한 도시에서 일상적인 작업을 하며 지내는 낯선 경험이었다. 생각한 것보다 힘들었고, 힘들었던 것에 비해 그리움이 길게 남았다. 서울로 돌아와서는 이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막막했는데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여러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반갑고도 의아했다. 책을 내는 건, 작가가 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던 걸까.
마음이 맞는 출판사와 책을 준비하기로 했다. 주제는 포르투. 도시를 주제로 삼았으니 여행책 같겠지만 에세이였다. 나와 에디터M은 호기롭게 말했다. “마감만 정해주시면 그 때까지 원고를 보낼게요.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저흰 마감이 정해지면 어겨본 적은 없어요.” 아아, 1년 전의 우리가 저런 정신 머리 없는 소리를 했다니. 그 말이 우스꽝스러울 만큼 여러 번 마감을 미루고 또 미뤘다. 태어나 경험한 가장 괴로운 마감이었다. 바빠서? 글을 쓰기 싫어서? 아니었다. 욕심이 나서 그랬다. 우리의 첫 책인데, 채 씹지도 못한 껌을 뱉어내는 것처럼 허접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얀 화면에 까만 커서가 깜박이는 걸 보면서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됐다. 그 용기를 내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남들은 “출판 준비중이에요~”하고 말하면 몇 달 안에 뚝딱 책이 서점에 깔리던데.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사실은 다들 이런 과정을 견디는 걸까. 일요일마다 숙제처럼 카페에 앉아 원고를 썼다. 포르투에 있을 때를 상기하기 위해 그 때처럼 와인을 마시곤 했다. 가벼운 취기가 오르면 관자놀이 부근에 간지러운 아련함이 느껴진다. 생각과 몸이 분리될 것 같은 간지러움. 그래서 나는 포르투에서 어땠더라. 행복했던가? 사실은 불행했나? 진짜 그랬나?
포르투에서 촬영한 수 천장의 사진을 다시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그 때의 기분을 상기해냈다. 층고가 높고 아름답던 우리의 이층집. 몸집 만한 여행 가방을 들고 나선형 계단을 처음 올라가던 순간의 기분. 도루 강가를 달리면 머리카락을 다 헤집어 놓던 바람. 8시간이 느린 세상에서 서울의 갈등이 멀어져 가던 그 감각. 그 순간의 공기와 냄새가 느껴질 것 같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니 그랬다. 다시, 포르투였다. 쓰는 내내 괴롭고, 행복했다.
물론 원고를 쓰는 작업은 시작에 불과했다. 주말마다 에디터M과 둘이서 밤을 새다시피 하며 “두 번은 못할 것 같아…”라며 끙끙 앓았다. 페이지마다 어떤 사진이 좋을지 고르고, 사진의 톤을 맞추고, 다시 고르고, 버리고, 또 다시 고르고. 어떤 종이를 사용해야 인쇄가 예쁘게 될지 고민하고. 책의 표지에 욕심을 내며 한 달을 넘게 씨름했다. 원하는 컬러와 소재를 찾기가 힘들어 전전긍긍. 상상 속에선 간단한 일이 인쇄소 앞에선 여지없이 무너졌다. 우리가 생각한 오렌지는 세상에 없는 컬러인 것 같았다. 거대한 기계가 요란스럽게 돌아가며 순식간에 똑같은 페이지 몇 십장이 켜켜이 쌓였다. 그리고 책이 나왔다.
처음으로 책을 손에 쥐어 보고선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표지 컬러는 내가 생각한 것과 조금 달랐다. 304페이지는 생각보다 두툼했다. 책장을 넘기니 종이 냄새가 났다. 코를 박고 깊이 숨을 들이 쉬었다. 진짜 책 냄새였다.
마지막 장에는 혜민이와 내 이름이 나란히 쓰여 있었다. 퍽 마음이 놓였다. 두 사람이라 설렘도 반으로 줄고, 두려움도 반으로 줄었다.
나이를 먹는 건 노련하게 무뎌지는 과정이다. 어릴 때 생각했던 것보다 내 인생이 시시하고 평범하다는 걸 점점 받아들여야 하니까.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내가, 사실은 아무것도 되지 않을 수도 있고, 그게 참담하게 나쁜 일은 아니라는 걸. 그리고 평범하게 시시한 어떤 날에는 모퉁이를 돌면 절대 이루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꿈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장래희망란에 작가, 라고 써넣었던 나이에서 스무 해가 넘게 지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작가가 되는 건 상상하던 것처럼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막상 책이 나온 이후론 그리 드라마틱한 순간은 없었다. 아빠는 글씨가 너무 작아서 보기 힘들다고 볼멘 소리를 했고, 할머니는 양장본이 너무 무거워서 손목이 아프다고 책을 내려놓으셨다. 엄마는 서점에 가서 딸의 첫 책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이상하게 내 책을 다시 들여다보는 게 낯간지럽다. 다만, 가끔씩, 누군가로부터 잘 읽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시간을 공유하는 것 같아서. 내가 그때 느낀 것들이 당신에게도 와 닿을 것 같아서.
나는 앞으로도 글을 쓰며 살 예정이다. 지금 느낀 묘한, 짧은 기쁨으로. 책이 잘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작가가 된 것 같은 야릇한 착각을 안고. 모퉁이를 돌아 오랜만에 만난 꿈에게 안녕.
책의 마지막 페이지로 내 기분을 전한다. 혹시 에디터H&M의 소중하고 어여쁜 첫 책이 궁금해지셨다면 ‘여기’로 가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