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여러분. 에디터H다. 요즘 고민이 많다. 왜냐면 일하기가 싫기 때문이다. 이게 뭐 그리 큰 고민이냐고? 나는 원래 노예근성을 타고난 일개미로서, 사회생활 10년 동안 큰 매너리즘 없이 종종거리며 일해왔다. 그런데 최근 몇 년은 지나치게 바쁘게 살다 보니 오히려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에 지쳐 업무 효율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리뷰를 쓰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았다가도 갑자기 다음 주에 나갈 영상을 고민하고, 3주년 파티에 쓸 용품을 고민하고,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시름에 잠긴다. 그러다 책 판매량을 고민하고, 다시 리뷰를 쓰려고 정신을 차리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뭔가 하루종일 쉬지 않고 바쁜 척을 하긴 하는데 실속이 없는 느낌? 출근하면 퇴근하고 싶은 기분? 이런 건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뭔가를 또 샀다. 후후. 뒷북일지 모르지만 구글 타이머라고 불리는 그 물건, 타임 타이머다. 사람들이 업무의 효율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하는 게 있다. 구글의 ‘스프린트’라는 업무 프로세스다. 스프린트는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테스트하는 과정을 단 5일 만에 끝내는 업무 방식이다. 보통 몇 달에 걸쳐 진행될 일을 5일 만에 해결해야 하니 시간을 타이트하게 사용해야 하는 건 물론이겠다. 그때 구글이 사용한 게 이 별거 아닌 물건, 타임 타이머다.
타임 타이머는 정말로 간단한 물건이다.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가진 MOD 타이머는 가운데 있는 분침을 손으로 돌리면 최대 60분까지 원하는 시간을 설정할 수 있다. 5분, 10분, 30분, 45분… 어떤 시간을 설정해도 좋다. 그럼 남은 시간이 새빨간 면으로 표시된다. 이 새빨간 영역이 줄어가는 걸 보며 마감 시간도 줄어든다는 걸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타이머 시간이 다 되면 뭔가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냐고? 아니, 그냥 듣기 싫은 알람 소리가 울릴 뿐이다. 이마저도 뒷면에 있는 버튼을 통해 음소거할 수 있다.
이 제품 자체에는 큰 특색이 없다. 깔끔한 디자인과 직관적인 UI, 초침이나 분침소리 없이 조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 하지만 고작 이 정도 특징은 손바닥만 한 타이머를 7만 원이나 주고 구입한 나의 호구 같은 행동에 면죄부가 되어주지 못한다. 그렇다. 타임 타이머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아무것도 아닌 물건을 비싼 값에 사는 행위 그 자체다. 나는 이렇게 해서라도 일을 열심히 해보겠다는 굳은 결심! 구글에서 썼다고 하니 나도 써봐야 할 것 같은 사대주의!
그래서 나는 비효율과 집중력 저하의 나날에서 해방되었을까? 지금부터 타임 타이머를 쓰며 깨달은 4가지 사실을 공개한다.
1. 인간이 5분 안에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많다.
타임 타이머는 아주 짧은 마감을 정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아주 사소한 일을 할 때도 마감 시간을 정해놓고, 신속하게 끝내야 한다는 긴장감을 느끼며 일하게 만드는 것이다. 메일 보내기, 오늘 촬영한 파일 백업하기, 유튜브에 영상 등록하기 등. 사소하지만 어쩐지 귀찮은 잡무 리스트를 만들고 하나하나 타임 타이머로 마감을 설정한 채 일해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내가 하기 싫어서 미루던 일들의 대부분은 정신 차리고 하면 5분 안에 끝나는 것들이었다. 5분이나 10분 타이머를 맞추고 집중력을 발휘하니 타이머의 빨간 부분이 다 닳기도 전에 일이 끝나버린다. 나는 인생을 얼마나 낭비하고 있었길래 5분이면 할 일을 미루며 살았던 것인가.
2. 60분 동안 집중하는건 생각보다 힘들다.
사실 내가 이 타이머를 하찮게 여겼던 가장 큰 이유는 최대 설정 시간이 60분 밖에 안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주로 하는 일은 리뷰나 각종 글을 쓰는 일이다. 대부분 60분 안에 끝나지 않는 작업이다. 겨우 60분의 마감을 정해놓고 일을 끝내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
어쨌든 7만 원을 주고 구입했으니 한 번은 제대로 써봐야 할 것 같더라. 60분에 타이머를 맞추고 글쓰기에 돌입했다. 진작에 써야 했는데 귀찮음에 일주일 동안 미뤄온 리뷰 마감이 있었다. 타임 타이머 첫 경험이었기 때문에, 계속 곁눈질로 눈치를 보며 일했다. 처음엔 영 움직이는 것 같지 않던 빨간 눈금이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가벼운 스릴을 느끼며 키보드 위를 노니는 손동작이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는?
놀랍게도 50분 만에 장문의 리뷰를 마감해버렸다. 평소라면 3~4시간은 걸리던 일을 50분 만에 끝낸 것이다. 물론 여기는 복합적인 외부 요인이 있었다. 이미 자료 조사를 다 마친 상태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시간을 빼앗길 요인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50분 마감은 놀라운 일이었다. “나 리뷰 다 썼다?”하고 말하니 에디터M이 깜짝 놀란다. 벌써?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억쒸 구글의 타이머! 역시 스프린트의 비밀 무기! 이 타이머만 있으면 못 할 일이 없어 보였다.
아쉽게도 첫 성공은 나의 강렬한 의지와 타이밍이 만난 찰나의 마법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그런 요행이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느꼈다. 60분을 온전히 집중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타이머 하나로 집중력을 붙잡을 수 있다는 건 순진한 소리다. 그저 때때로 도움이 될 뿐.
지금도 이 글을 쓰며 60분짜리 타이머를 맞춰놨지만, 초반 20분을 바람과 인터넷의 세계에 날려 보냈다. 뒤늦게 집중을 발휘해보지만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아무래도 시간 내에 마감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3. 생각하는 것보다 짧은 마감을 정하자.
여기서 세 번째 깨달음을 얻는다. 60분을 집중하는 게 어렵다는 걸 알고 나서는 최소 5분, 혹은 10분, 20분 단위 정도로 짧게 끊어 마감을 정했다. 여러 작업을 좀 더 세분화한 뒤에 하나하나 마감을 하는 방식이다. 기획안을 쓸 때도 내용을 만드는 작업과 디자인 작업을 분리해서 마감을 정한다. 마감이 짧아지면 좀 더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갈 수 있다. 이 마감이 끝나면 중간에 숨을 돌릴 수 있으니까. 리뷰를 쓰더라도 기획과 자료수집, 서론, 본론, 결론 집필을 나누어 각각 시간을 정한다. 꽤 효율적이었다. 그런데…
4. 사람은 짧은 시간동안 생각보다 더 많은 딴 생각을 한다.
문제는 글을 쓰기 전 자료 수집 파트에서 발생한다. 애석하게도 가장 첫 번째 파트다. 나한테 필요한 정보만 15분 동안 수집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크롬 창에 접속하는 순간 나의 정신 상태는 어디론가 납치당한다. 그 세계는 월드와이드웹… 넓고, 탐욕스러우며, 세상 모든 정보가 있는 곳이다. 눈을 깜빡이는 사이 15분에 맞춰놓은 타이머가 2분만 남기고 있다. 그 사이 내가 습득한 정보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문제라면 나한테 필요한 정보 쏙 빼고 습득했다는 것이다. 방금도 타임 타이머의 유래에 대해 정보를 검색하면서 몇 번을 딴 길로 샜는지 모른다. 다시 돌아와서 구글 스프린트가 무엇인지 검색하다 또 한 번 새고,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연관 영상을 보고 말았다. 정말이지 나도 나 자신에게 놀라고 말았다.
짧은 시간을 나누어 사용하다 보면, 내가 얼마나 옆길로 잘 새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타임 타이머는 그걸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알게 해준다. 내가 얼마나 산만한지를. 이 전까지는 몇 분의 시간을 어떻게 낭비하는지 정확히 몰랐지만, 지금은 정확히 알게 됐다. 그래서 지금은 되도록 이 사실을 의식하고 마감에 집중해보려고 애쓴다.
이제 결론을 내야겠다. 왜냐면 타임 타이머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은 매일 아침 출근하면 메일을 보내며 타이머의 분침을 돌린다. 빨간색이 늘어나면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줄어들면 조급해진다. 사실 스마트폰에도 타이머 기능은 있다. 하지만 이 시계의 가치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분침을 돌리는 행위 자체에 있다. 모든 일에는 끝나야 하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내가 정한다. 나는 나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인가? 이 7만 원짜리 건방진 타이머가 매일 내게 질문을 한다.
타이머가 울린다. 그래서 오늘 리뷰는 여기까지.